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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김 전 총리의 위패와 영정, 태극기로 감싼 관이 영결식장 안으로 들어오자 김 전 총리 딸 예리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눈물을 흘렸다. 영정 뒤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과 전직 국무총리들이 보낸 조화가 세워졌다.
장례위원장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김종필 총재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 민주화가 싹 트이고 성장할 수 있었다”며 깊이 애도했다.
이 전 총리는 “35살의 혁명, 두 차례 총리 역임, 9선의 국회의원, 4번의 정당 총재 등은 우리나라 국정과 정치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기여를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산업화 추진과 정치 발전이라는 대업의 뒤안에서 고뇌도 컸을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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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총리의 오랜 친구이자 올해 100살이 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아들 나카소네 히로부미(中曾根康弘) 참의원의 대독 조사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전후 혼란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국이 부흥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책을 맡으셨다”고 평가했다.
또 나카소네 전 총리는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 한 생애였다”며 “좋은 옛 친구를 떠나 보내 참으로 슬프기 짝이 없다”고 애도했다. 조사에 이어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봄날은 간다’는 조사를 부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차는 고인이 머물렀던 청구동 자택으로 향했다. 유족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예를 갖춰 노제를 올렸다. 김 전 총리의 손자는 영정을 안고 고인이 지냈던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자택 벽면 한쪽은 천생배필로 불릴 만큼 다정했던 고(故) 박영옥 여사와 김 전 총리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유족들은 김 전 총리가 머물렀던 2층 침실과 서재, 1층 거실을 천천히 돌며 고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유족들은 운구차 아래 수박과 대추 등을 올리고 노제상에 향을 피운 뒤 절을 올렸다. 유족을 비롯한 정치인, 이웃 주민 100여 명이 운구차를 에워 쌌고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들은 10여 분 간 차례로 예를 올렸다. 노제를 지낸 뒤 운구차는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을 향했고 1시간 30분 동안 화장이 진행됐다.
운구차는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와 부여초교 교정,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장지인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으로 향했다. 김 전 총리는 2015년 부인이 영면한 곁에 묻혔다. 김 전 총리는 생전에 “고향의 가족묘원에 먼저 간 아내와 같이 묻히겠다”며 국립묘지 대신 부인이 잠들어 있는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