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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칼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기사승인 2018. 06. 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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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급류처럼 흘러간다. 북·미의 비핵화 협상과 남북한의 평화 교섭이 숨 가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곧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북한이 실질적이고 필수적인 핵 폐기 조치를 실천한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보류하고 한국군의 독자적 방어훈련까지 중단하는 등의 일방적 양보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다. 스위스는 국경에서 대치하는 적군이 없는 중립국이지만 해마다 30만명 이상을 군사훈련장에 투입한다. 안보란 그런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극과 극으로 대조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는 민주국가이고, 빈곤국가에 속하는 북한은 일가족이 대대로 주민들을 지배하는 독재국가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 미국이 그 독재체제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인데, 누군가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그저 전쟁만 없으면 독재도 평화가 되는가. 독재와 평화의 짝짓기는 가치의 혼란을 야기한다. 더 큰 걱정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와 우리가 바라는 비핵화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동맹의 안전보다 자국 우선주의에 집착하면 북핵의 완전 폐기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다. 우리 안보의 위기다.

한국과 북한도 모든 면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은 대통령을 권력남용 혐의로 탄핵하고 심판하고 감옥에 가두는 법치국가인데, 북한은 통치자가 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해도 끄떡없는 21세기 유일의 봉건왕국이다. 한국은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여기지만, 북한은 절대권력자 1인의 최고 존엄을 우상처럼 떠받든다. 밤이 되면, 남쪽은 현란한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지만 북쪽은 평양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칠흑처럼 어두워진다. 이처럼 상반된 남과 북이 화학적 결합으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비록 남과 북은 통일을 원한다 해도 북한을 속국쯤으로 여기는 중국이 이를 방임할 리 없다. 중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뒤 한반도를 자신의 패권(覇權) 아래 두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이웃이다.

그렇다고 비핵화와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외세 때문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평화의 여정이 멀고 험하다는 뜻이다. 시간적으로만 먼 것이 아니다. 과정과 절차가 복잡하고 앞길에 숱한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그 험난한 과정과 난관을 일사천리로 통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내야 한다. 반대자를 설득하고 비판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모두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이 높을수록 현실의 낮은 자리를 두루 살피고, 목표가 멀수록 가까이 있는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일이 급할수록 직진만 할 것이 아니라 에둘러 갈 필요도 있는 법이다. 역대 정부가 핵심 정책을 조급하게 밀어붙이며 독주(獨走)하다가 실패로 끝장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지난 시절, 우파는 인권보다 경제를 앞세웠고 좌파는 경제보다 인권을 부르짖었다. 그 굳센 신념들이 휴전선만 넘으면 거꾸로 뒤집힌다. 지금 우파는 북한의 경제보다 열악한 인권상황을 더 걱정하고, 좌파는 북한의 인권보다 낙후된 경제현실을 더 염려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따로 내달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함께 가는 법이 없다. 그러나 휴전선을 경계로 신념이 뒤바뀔 수는 없다. 경제생활의 기초인 의식주는 생존의 필수조건이고, 인권은 인류 보편의 가치다. 어느 것도 외면할 수 없는 북한의 절박한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우파는 인도적 대북 지원에, 좌파는 북한의 인권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각자의 주장에 믿음이 실리고 미래를 향한 걸음도 함께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먼저 가려거든 곧장 가고, 끝까지 가려거든 에둘러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고,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지혜로운 인디언의 격언이다. 비핵화와 평화통일의 길은 혼자서 빨리 달려가는 탄탄대로가 아니다. 모두 함께 가야 하는 멀고 험한 길이다. 그 멀고 험한 길 끝에 푸른 숲 같은 겨레의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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