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법원은 소송가액 3000만원 미만의 소액 민사사건이나 즉결심판, 협의이혼 등을 처리하고 주로 지역주민과 서민들이 찾는다. 이 때문에 소송당사자들이 거의 변호사 선임도 하지 않고 소위 실속도 없어 판사 지원자가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법원은 1995년부터 원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시·군 판사로 임용해왔으나 지원자가 없어 2010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이런 자리에 박 전 대법관이 지원한 것이다.
전직 대법관들은 그동안 퇴임 후 대부분 유명 로펌에 재취업해 후배법관들로부터 전관예우를 톡톡히 받아와 물의를 일으켜 왔다. 대한변협이 전직대법관에 대해 2년간 변호사 등록 및 개업을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전직 대법관이 퇴임 후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학의 로스쿨 교수, 법원의 조정센터 등에 불과했다고 한다. 따라서 퇴임 후 갈 곳이 없는 원로 법관에 대해서는 갈 곳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이는 법원 판결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륜을 겸비한 원로 법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는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서민들에 대한 사법서비스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대법원은 현재 임기를 마친 법원장급 고위법관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원로 법관제를 시행중이다. 이에 따라 고위법관 출신 5명이 시·군 법원에서 소액재판 등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정년이 65세로 제한돼 있어 재직기간이 짧은데다 1심법원 판사와 동일처우를 받으며 업무가 과중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이들 자리 지원자들이 오래 머물기보다는 로펌에 취업 때까지 머물다 가는 자리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따라서 고위판사에 대한 미국식 시니어 판사(Senior Judge)제도의 도입은 검토할 만하다. 업무량을 종전의 25% 수준으로 파격적으로 줄여주고 그 대신 급여를 종전의 70%로 낮추는 한편 시골판사의 정년도 늘리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업무도 소액심판 외에 일반조정사건, 사법행정, 외부봉사활동뿐 아니라 강의도 일정수준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법관의 시골판사 지원을 계기로 원로판사제도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