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수소·전기차시대 앞당긴다고?… 정유업계 발만 ‘동동’

수소·전기차시대 앞당긴다고?… 정유업계 발만 ‘동동’

기사승인 2018. 12. 27.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Print
수소·전기자동차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정부 발표에 휘발유·경유로 수익을 내고 있는 정유업계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정유사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이슈지만, 에너지전환을 방점에 둔 정부 정책에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선으로 곤두박질치면서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4분기 적자전환이 우려되고 있다. 사놓은 원유의 재고평가손실 등에 따른 영향으로 이미 2014년 정유사들은 수조원대 손실을 본 바 있다.

하지만 국제정세에 따라 언제든 급등락할 수 있는 국제유가보다 업계가 더 주시하고 있는 건 내달 정부가 내놓는다는 수소경제 로드맵이다. 정부는 이미 2022년까지 1.5% 수준의 친환경차 국내 생산비중을 10%로 높인다는 큰 그림을 내놨다. 향후 4년간 전기차와 수소차를 각각 43만대, 6만5000대 보급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로, 충전소 확보 등의 구체적 안은 로드맵에 담긴다.

예상보다 강력한 친환경차 전환 드라이브는 회사에 따라선 중장기 경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할 정도의 문제로 떠올랐다.

정유4사는 그동안 원유에서 더 많은 양의 휘발유·경유를 추출하기 위한 ‘고도화’ 설비 투자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어 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4사의 고도화율(고도화설비 용량과 단순 정제능력 간 비율)은 평균 25.4%에 달한다. 고부가가치 휘발유·경유 판매가 곧 회사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각사는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왔다.

하지만 고도화 설비 구축은 동일한 규모의 일반원유정제시설 투자비의 10배 정도가 소요되고 건설에만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아직 먼 얘기일 지 모르지만 정부가 연료전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 놓은 상황이라, 중장기 대규모 투자인 고도화설비 구축 결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며 “심화되는 환경규제에 따라 고도화 투자는 가야 하는 방향이 맞지만, 석유산업의 앞길은 더 예측하기 힘들어졌다”고 진단했다.

더 큰 문제는 연쇄적으로 발생할 지 모를 부작용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유사들은 내수시장에서 판매하고 남은 휘발유 7986만5000배럴, 경유는 1억7006만7000배럴을 수출했다. 생산한 석유제품은 국내시장에 팔게 되면 마진이 가장 좋지만, 팔고 남은 물량은 이윤을 적게 남기더라도 싱가포르 등 해외에 내다 팔아야 한다. 만약 안 팔린 석유제품이 주 수출시장인 아시아에 대거 풀린다면 역내시장 과잉이 초래되고 추가적인 수출단가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파는 석유화학업계까지 이어진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납사가 20.6% 비중으로 생산되는 데 이는 거의 전량 국내 화학사에 공급되며 전체 수요의 절반 가량을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 등 수요가 급감하면 연산품인 납사 생산 역시 줄게 되고 화학사들은 대부분을 해외서 수입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화학사들은 균일한 품질과 수급 안정성을 이유로 국내 정유사들로부터 납사를 공급받길 원한다. 외국서 납사를 공급받게 되면 회사별로 품질이 달라 가공하는 과정서 효율이 떨어질 수 있고, 파이프만 틀면 공급받을 수 있는 국내와는 다르게 배에 싣고 와 하역하고 또 옮겨야 하는 과정에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또 전국 1만2000여개에 달하는 주유소의 장기적 일자리 문제 역시 고민해야 할 요소다. 민관이 합동으로 추진한 3차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주유소 일자리와 관련해선 특별히 논의된 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중장기 업종 전환과 충격 완화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최근 산업부가 주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토론회에서 김현철 대한석유협회 상무는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발전부문은 신재생에, 수송부문은 전기·수소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다”며 “친환경정책에 이의는 없지만 에너지공급의 안정성·국가경쟁력 측면에서 균형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업계에선 석유산업 미래와는 별개로, 정유사들이 꾸준히 추진해 온 사업다각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배터리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고, 다른 정유3사도 석유화학을 병행하며 종합에너지화학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정제 설비 투자보다는 다운스트림 중심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체제로 전환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