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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는 최요삼에게 멀티복싱을 전수했던 장정구 챔프와 88체육관 선배복서 문성길 그리고 이 고장 출신의 전직 프로복싱 국내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인 백상현(62)과 원진체육관에서 최요삼을 발탁·지도했던 김용석씨(62) 등 최요삼과 연관된 복싱인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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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체육관에서 양홍수, 손오공, 최완택, 임종대를 지도한 김용석 사범(현재 아산에서 개인사업)은 “1987년 중학교 2학년이던 최요삼이 서울 용산구 원진체육관에 등록할 때 ‘사범님 나 세계챔피언 될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던 그 맑고 초롱한 눈망울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고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최요삼의 첫 스승이었다.
윤광호 정읍복싱협회 회장(54)은 축사를 통해 “한국 복싱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 고장 출신의 최요삼 선수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리고 침체된 전북복싱 발전에 새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최요삼 추모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회를 이어감은 물론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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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복싱은 한동안 최하위권을 맴돌다 올해 익산에서 벌어진 제9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15년 만에 종합 2위로 수직상승하는 성과를 올렸다. 전북복싱은 새 천년을 전후해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하는 등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회장 공백까지 겹치며 난국에 처했다. 이때 공수부대출신 이용선 전북복싱협회 수석부회장(70)이 회장 직무대행의 중책을 맡아 전열을 정비하며 새롭게 출발했다. 그는 1980년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해 1991년부터 국제복싱(AIBA)연맹 심판위원으로 활동한 복싱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복싱인이었다. 이용선은 1981년 전주에서 전광복싱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두 체급 동양챔피언 고인식(원광대), 신인왕 출신의 홍현(용인대)의 프로선수를 배출했고, 호위무사같은 황의준(동아대), 박명규(전북대) 등 걸출한 아마추어 선수는 중앙 심판으로 양성했다.
이후 그는 1993년 방글라데시 국가대표감독으로 부임해 제6회 SAF대회에서 금1 은3개 동5개로 역대 방글라데시가 거둔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에 대한복싱협회는 그를 국가대표 복싱상비군 코칭스태프로 전격 발탁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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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사업체 대표로 있는 한양희 위원장은 협회 운영기금으로 1500만원을 쾌척하는 등 종합 2위를 달성하는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이에 전북체육회에서 그의 공로를 인정해 6박 8일간 호주로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원광대 출신의 김원전 부회장은 1977년 킹스컵 국가대표를 엮임한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복서출신이다. 선배 이용선과 후배 한양희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맡아 이번 전국체전에 전북복싱이 화룡점정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주역에 동성상응(同聲相應)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소리는 서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사람도 비슷한 생각과 꿈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반응하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한명의 소리는 약하지만 그 소리들이 함께 반응하여 집단화하면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느 집단이나 불협화음은 패망의 지름길이기에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글귀다.
한편 전북복싱은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신준섭(57·남원)이 남원시청 감독을 맡아 향후 전북복싱 발전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그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사반세기가 지나 자신의 울타리로 컴백을 한 것이다. 전북 복싱에 수장인 이용선 회장대행으로선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신준섭의 합류는 천군만마(千軍輓馬)를 얻은 듯한 감흥에 젖을 것 같다. 내년에도 제2회 최요삼 추모배와 함께 지속적인 전북복싱 발전을 기대해 본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서울시복싱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