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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3·1운동 100주년, 우리 교육을 다시 묻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3·1운동 100주년, 우리 교육을 다시 묻다

기사승인 2019. 03. 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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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제공=서울시교육청
오산학교, 신안학교, 대성학교, 보창학교, 양실학교, 가명학교, 신흥학교, 흥양학교, 명륜학교, 경성학교, 양산학교, 협성학교…

신민회가 교육구국운동을 위해 설립한 대표적인 학교 이름이다. 1907년경 국권 회복을 목표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신민회는 4대 강령 중 하나로 ‘교육기관 설립으로 청소년 교육 진흥’을 채택하고, 서북과 중부지방에 수많은 학교를 설립했다. 신민회 간부였고 후에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선임된 이동휘가 이 시기에 혼자 세운 학교만 해도 100여개라고 한다.

을사늑약 이후 북간도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도 학교를 설립했다. 1906년 설립해 통감부의 감시와 방해로 1년 만에 폐교된 서전서숙의 민족교육정신을 계승해 1908년 설립한 명동학교(명동서숙)가 대표적이다. 명동학교는 1925년 폐교할 때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키워냈다. 1919년 조직된 대한국민회의 주요 인물 대부분이 명동학교 출신일 정도였다.

러시아에도 학교가 설립됐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는 한민학교, 보흥학교, 신덕학교, 양성학교, 신한학교, 입신소학교, 화동학교 등 수십 개의 학교를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위에 열거한 사례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사실상 어디든 학교가 설립됐다. 독립운동가들은 왜 학교부터 설립했을까?

당시 교육의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다.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높이고, 해방과 건국을 위해 실력을 쌓는 것이었다. 학교의 설립자도,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모두 한마음이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이러한 목적의식이 무척 높은 수준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1919년의 폭발적인 독립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니다. 십 수년간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고취시켰던 교육의 역할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독립운동가들이 얼마 안 되는 독립운동 자금을 쪼개고 또 사비를 털어 가장 먼저 학교부터 지었던 이유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교육을 다시 생각해본다. 2019년의 우리 교육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만큼 교육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물론 식민지 시기였던 100년 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라는 목표는 우리 시대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 학생들이 각자가 가진 다양하고 창의적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이를 통해 ‘창의적 민주시민’으로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에 맞는 교육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을 대하는 100년 전의 치열함을 되찾는 일이다. 100년 전 전력으로 학교를 세우던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학교에 담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가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출혈·무한 경쟁의 장으로 놔둘 것인지, 다양성이 인정되는 우정과 협력의 공동체로 가꾸어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교실의 모습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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