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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정화 검사 “내 판단이 한 사람의 인생 좌우…옳은 결정인지 항상 고민”

[인터뷰] 서정화 검사 “내 판단이 한 사람의 인생 좌우…옳은 결정인지 항상 고민”

기사승인 2019. 03. 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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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마약전담 서정화 검사, 마약 사건 多 인천·부산·중앙지검 두루 거친 '마약 수사 전문가'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 해도, 최소한 내 눈앞에 세상은 정의롭게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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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ettyimagesBank

<인터뷰 내용을 검사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아시아투데이 허경준 기자 = 여러 부서를 거쳐 마약수사를 맡은 지 벌써 5년째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 사건이 제일 많은 인천지검과 부산·서울중앙지검에서 마약수사를 전담했다.

마약사범들은 수사망을 피하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뛰어다닌다. 우리는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뛰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날아다녀야 한다.

마약수사는 지게라고 불리는 운반책을 검거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운반책을 검거한 뒤부터는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운반책만 잡고 끝나는 사건은 없다. 운반책을 시작으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다 보면 반드시 중간책이나 윗선이 드러나게 돼 있다.

운반책 중 대부분은 단순히 짐만 옮겨주면 돈을 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 졸지에 마약밀수범이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연이 아무리 안타깝더라도 구속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구속되면 운반책의 가족들이 찾아와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며 선처해 달라고 울면서 비는 분들도 있다.

검사 생활 11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럴 때가 가장 힘들다. 이들도 한 가정의 성실한 가장이자 아들과 딸일 수도 있는데, 내가 정말 옳은 결정을 한 것인지 고민이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져야 하는데 어떤 수사를 하든지 나로 인해 가슴에 피멍이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씁쓸하게 느껴지고 공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잠을 줄이면서라도 수사에 매진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틴다.

모든 검사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강력부는 정해진 일정대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기록검토와 조사 등 기본적인 업무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고 쫓고 있는 피의자가 나타나면 곧바로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게 마약수사다.

오전 회의가 끝난 이후부터 하루에 2명 이상, 많게는 5~6명의 피의자를 조사한다. 조사는 대개 오후 4시면 마무리되지만, 본격적인 업무는 피의자들이 조사를 마치고 돌아간 뒤부터 시작된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토해서 수사지휘를 하고 송치된 사건의 기록도 살펴봐야 한다. 굵직한 사건이 발생하면 검사실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밤샘 근무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실 1~2년차 검사 시절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얇은 기록 위주의 쉬운 사건들을 처리했다. 하지만 3년차부터는 사안 자체가 무거운 사건들을 맡게 된다. 내 판단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잘못될 수도 있는 사건들인 것이다. 누구 하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우리는 왜 죽을 둥 살 둥 일할까. 월급은 정해져 있고, 매일 같이 야근을 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부장검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밤새워 일하고 주말까지 출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리 눈앞에 있는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해도, 최소한 내 눈앞에 있는 세상은 정의롭게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혜택을 받기 위해서 검사가 됐다면 진작 그만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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