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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백두산 화산 폭발

[칼럼]백두산 화산 폭발

기사승인 2019. 04. 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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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빈번히 사용된 극작술이다. 라틴어로서 ‘기계에 의한 신’으로 직역할 수 있다. 실제 무대에 기중기와 같은 기계장치를 만들어 그 위에 신으로 분장한 배우를 태우고 나타난다. 이 같은 절대적인 존재의 출현으로 극 중 인물들이 직면한 사건들은 급히 마무리된 채 대단원의 막이 내려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이야기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그 자체 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하며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중세와 바로크 시대까지도 이를 차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긴 했으나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됐다. 시학이 유럽에 소개된 이후엔 개연성 및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이론’이 오랜 기간 드라마 작법의 중심이 됐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이론 역시 감정이입이라는 환영주의에 기대어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후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 기초한 ‘소격효과’가 부각된다. 이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감정이입이라는 몰입을 방해하는 이 같은 기법을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현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정이입 플롯,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고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극작술 모두 콘셉트에 따라 극의 내외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반전을 위해 적절하게 혼용돼 활용되고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방식으로 극을 마무리하는 영화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 또한 기계적 신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 핵전쟁을 피해 영국을 탈출하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25명의 아이들은 권력을 두고 서로 다투다 종국엔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생존투쟁으로 내몰린다. 한편에선 죽이고자 다른 한쪽에선 살고자 섬을 가로질러 내달리다 도착한 막다른 바닷가에서 장갑차를 앞세운 해병대가 상륙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리셋 된다. 죽이려는 아이들도 도망치던 아이도 그간의 권력투쟁이 무색해진다. 소설에서는 해병대 대신 연기를 보고 온 구조대로 설정됐고, 살아남은 아이의 성찰로 그 끝을 맺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가득한 바닷가 신으로 끝난다. 영화가 훨씬 문학적이란 느낌을 받은 드문 경우였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 ‘매그놀리아’에서도 발견된다. 다양한 군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극의 결말부가 돼서도 꽉 막힌 채 도통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감정이입이 극에 달한 관객 역시 갑갑증에 걸려 끝을 갈구하게 된다. 이때 느닷없이 하늘에서 ‘개구리비’가 내린다. 달리는 차의 지붕에 떨어져 차를 전복시키고 가옥의 유리창을 박살 내면서 호기롭게 내리는 개구리비는 개구리만큼 크다는 비유가 아니다. 진짜 개구리가 비처럼 내린다. 어떤 개연성도 없다. 일종의 천재지변이다. 영화 전편에 개구리를 암시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개연성 따윈 필요 없는 대단원의 마무리는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백두산 화산 분출을 예측하는 기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상륙이 암시하는 ‘전쟁 상황’이나 백두산 화산 분출과 같은 ‘재난 상황’은 인재와 천재라는 차이가 있을 뿐 ‘현재라는 드라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는 ‘종국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백두산 화산 분출 등에 있어 진정한 해결책은 북한과의 진솔한 대화이지 않을까 싶다. 그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던가!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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