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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한 투쟁하시라” DJ 영원한 정치적 동지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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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기자

승인 : 2019. 06. 11. 09:22

이희호 여사 별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사진은 2018년 1월 1일 이희호 여사가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신년하례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
“정부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남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였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고난 가득한 정치 역정을 함께 했고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혔다.

특히 민주화를 향한 김 전 대통령의 신념이 숱한 정치 탄압을 받을 때 이 여사는 버팀목이 돼 줬다.

이 여사는 1971년 대선 당시 직접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돼 만약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고 연설하며 남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1972년 이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고 해외에서 유신 반대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여사는 편지에서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김 전 대통령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도 이 여사는 “우리의 남편들이 한 일은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여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히 일하다가 고난을 받고 있는 우리의 남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977년 징역 5년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이감된 김 전 대통령을 옥바라지 하던 이 여사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 여사는 당시 편지에서 “당신은 언제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입니다”라며 독려했다.

이 여사는 이후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과 귀국 후의 가택연금, 잇단 대선 낙선 등 숱한 시련을 거쳐 제15대 대선에서 당선되고 2009년 8월 서거하기까지 곁을 지켰다.

이 여사는 국장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잠시 멈춰선 동안 단상에 올라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당부했다.

이 여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북 화해를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5년 8월 방북 후 돌아온 이 여사는 “평양에서 애육원, 육아원을 방문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여사는 “국민 여러분도 뜻을 모으셔서 6·15가 선포한 화해와 협력, 사랑에 선언과 평화와 하나 됨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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