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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간병가족들의 암울한 현실 그린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새책]간병가족들의 암울한 현실 그린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전혜원 기자 | 기사승인 2019. 07. 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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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핵가족화시대 간병문제,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숙제
간병살인
““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런 것 같아요….” 2016년 9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중년 남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신고했다. 출동한 형사들은 안방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이일자(86세) 씨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둔 이씨 목에는 삭흔(索痕·목 졸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씨의 남편 정수천(89세) 씨는 다른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중략)형사들이 양쪽에서 부축해 경찰서로 데려가는 동안 노인은 다짐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임자, 잘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15~16쪽)

신간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환자를 돌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간병살인’에 관해 다룬 책이다. 간병 가족들의 암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가 2018년 9월 3일부터 12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연재한 동명의 기획기사를 담은 책이다. 연재에 미처 다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추가하고, 기존 내용을 보완해 편집했다.

초고령화·핵가족화 시대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 간병 문제는 가장 먼저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시작된 이 기획은 정부를 비롯해 여러 사회단체가 이 문제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드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이른바 ‘노-노(老-老) 간병’의 실태를 조명했고, 2장에서는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다중간병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3장에서는 폭언·폭행 같은 이상행동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다루었고, 4장에서는 허울뿐인 정책 구호 앞에서 좌절하는 ‘장애인 간병 가족’들의 아픔을 담아냈다.

5장에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간병살인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6장에서는 가족을 잃은 끔찍한 사건 속에서 고통받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7장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간병의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했고, 마지막 8장에서는 간병살인과 관련해 한국 사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짚어봤다.

저자들은 간병살인에 관한 마땅한 국가 통계가 없어 가족 간병살인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2006년부터 10여 년간 간병살인 관련 판결문을 모두 확보하고, 보건복지부가 진행 중인 자살사망자 전수조사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분석한 자살사망자 289명의 심리부검 사례도 확인했다.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간병살인 가해자들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는데, 직접 만나지 못한 경우에는 주변 친인척과 지인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그렇게 꼬박 3개월에 걸쳐 목도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간병살인 가해자 수는 154명, 희생자 수는 213명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213’ ‘154’란 숫자는 간병살인 희생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가족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숫자를 강조한 것은 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간병살인’ ‘간병자살’ 같은 비극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알리고, 간병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은 “기사가 나간 뒤에도 여전히 벼랑 끝에 선 간병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어지고 있다. 실제 2018년 1월부터 이 기획이 나가기 직전인 8월까지만 해도 10여 명이 간병을 해주던 가족에게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무디기만 하다. 이런 점에서 이 기획은 미완이다. 못 다한 이야기들을 묶어 후속 기획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들어가는 말’에서 밝혔다.

이 기획은 ‘제50회 한국기자상’ ‘제36회 관훈언론상’ ‘제21회 국제앰네스티언론상’ 등 언론계의 굵직한 상들을 휩쓸었다. 수상 소감에서 저자들은 “오늘도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식이거나 부모여서, 선의로 때론 의무감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아군의 지원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난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며 사회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해주기를 요청했다.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지음. 루아크. 240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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