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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발표에 대한 대응 방안의 하나로 관련 업종별 수요·공급망을 하나로 묶기 위한 협의체를 가동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소재국산화 정책 관련) 업종별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서플라이체인을 연계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중요 포인트로 보고 부처 간 협의에 들어갔다”며 “양측이 무엇을 원하고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듣기 위해 산업계와 긴밀히 만나고 있다”고 했다. 관련 협의체를 상설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정밀소재기업들이 가장 바라는 전략이다. 박영선 중소기업벤처기업부 장관이 최근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안 사준다는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최태원 SK 회장은 “만들 순 있지만 품질의 문제”라고 답한 바 있다. 이런 간극을 메우는 데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밀 소재기업들은 그동안 대기업이 원하는 제품의 스펙(규격·조건 등 상세한 요구사항)을 모르기 때문에 준비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미리 스펙을 제시한 뒤 맞춤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면 국산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과거 대기업들은 값싸고 품질도 나은 일본산 수입이 더 편하고 합리적이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90년대 국내 업체들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몇몇 전자·섬유·기계 핵심부품을 국산화하자 이를 공급하던 일본업체들이 가격을 절반 선으로 떨어뜨리는 덤핑공세에 나섰다. 이에 따라 중소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도산의 길을 걷거나 사업을 전환했다.
이와 관련,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도 일본이 규제한 3개 소재를 어느 정도 만들 순 있지만, 워낙 일본에서 수입이 많다 보니 우리 소재기업들로선 입찰 기회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장기적으로 나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을 연결하고, R&D 과제를 함께 풀어나간다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화학업계는 이번 일본 조치를 기회로도 본다. 정부와 대기업들로서도 일본 소재를 수입할 때 안게 될 리스크를 더 명확히 인식했고 소재 국산화를 위한 의지와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자발적으로 생태계 구성에 나섰다면 더 좋았겠지만 잘 안됐다”며 “정부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줘야 할 때”라고 했다.
다만 밸류체인을 형성하는 데 어떤 잣대로, 어떤 기업들을 선택하느냐 하는 등은 과제로 지적된다. 자칫 특혜를 받는 업체와 소외되는 업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정밀화학업계 관계자는 “소재 기업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으므로 소수의 수요·공급선을 연결하게 되면 불협화음이 일 수 있다”면서도 “일본과 무역전쟁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체질 개선을 이룬다는 측면에선 충분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