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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인터뷰]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문턱 낮추고 우리미술 중심 세우겠다”

[창간 인터뷰]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문턱 낮추고 우리미술 중심 세우겠다”

기사승인 2019. 11. 1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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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덕수궁·서울·청주관 4관 체제 본격 이끌어
"서울관에 한국미술 상설전 열고 과천관 어린이미술관 대폭 확대할 것"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송의주 기자 songuijoo@
올해 5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은 한 해 예산 700억원을 집행하는 세계적 규모의 국내 유일 국립 미술관이다. 이곳에 지난 2월 부임한 윤범모(68)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과천·덕수궁·서울관에 이어 작년 개관한 청주관까지 4관 체제를 본격 이끄는 ‘한국 미술계 수장’이다. 미술사학자, 평론가, 기획자 등 종횡무진하며 우리 미술계와 함께 해온 윤 관장을 아시아투데이가 만났다.

◇미술관 문턱 낮추고 서울관에 우리미술 상설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이 안으로 잘 안 들어와요. 미술과 친해지면 굉장히 삶이 풍요로워지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는데 말이죠. 미술관 문턱을 낮춰 누구든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 4관 체제 원년을 맞아 역대 관장 중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윤 관장은 취임 초기부터 강조한 ‘이웃집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미술관에 들어갈 때 괜히 주눅 들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펼쳐진다”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가 정답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평소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윤 관장은 서울관에 우리 근현대미술 상설전시관을 운영할 계획도 밝혔다.

“서울관이 아무래도 중심부에 있다 보니 외국인 관람객들이 많아요. 이들이 한국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봅니다. 서울관 내 접근성이 좋은 제1전시장을 상설전시공간으로 꾸밀까 합니다. 내년 상반기 오픈 예정이에요.”

이어 과천관의 어린이미술관을 강화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가족 중심의 어린이미술관을 5배 이상 확대할 예정입니다. 야외조각공원에 놀이 기능이 있는 조형물을 세우면 조각작품 아래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지 않을까요. 공원을 재단장해 활성화할 겁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 통사 작업도 진행 중이다. 내년 연말까지 개설서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후년에는 영문판이 나올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명이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제공=국립현대미술관 ⓒ명이식
◇민중미술과 북한미술...외로운 길을 꿋꿋이 가다

윤 관장은 ‘계간미술’(월간미술 전신) 기자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전시기획자 겸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특히 민중미술 계열 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19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을 일으킨 집단 ‘현실과발언’ 창립 멤버였고, 민족미술협의회 산하 ‘그림마당 민’ 운영 위원으로 참여했다.

수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로 일하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 걸개그림 ‘세월오월’ 전시를 놓고 광주시와 갈등을 빚어 사퇴한 바 있다.

이보단 앞서 예술의전당 초대 미술관장으로 활동하던 1990년에는 ‘젊은 시각’ 전시를 열었다가 정부의 간섭에 반발,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그는 “민중미술 계열의 공공미술관 전시에 대한 정부 및 예술의전당 측의 강압적 간섭과 규제는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강조한 ‘문화의 자율성’을 스스로 깨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류에서 멀리 떨어진 민중미술에 천착하며, 어찌 보면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걸었다. 이에 관해 윤 관장은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당시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얘기했다.

“미술계가 너무 서구 일변도로 가니까 ‘우리 미술의 진면목은 뭘까’ 자꾸 이런 의문을 갖게 됐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뭘까’ 고민했지요. 1980년대는 격동기였어요. 미술로 시대의 변화, 민주화에 한번 동참해보자 하다가 그렇게 됐어요. 그냥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몰라서 그랬죠. 약은 사람은 그렇게 못할 겁니다.”

그는 북한미술 전문가이기도 하다. 1998년 북한 당국 초대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등을 다녀간 적 있으며 다수의 북한미술 전시 기획을 맡았다. 2000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만수대창작사까지 평양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 ‘평양미술기행’도 펴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송의주 기자 songuijoo@
◇오지탐험가로...시인으로...

윤 관장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독특한 면이 있다. 주류에서 벗어난 민중미술이나 북한미술에 남다른 관심을 쏟은 것도 그러하지만 십여 년간 오지 여행을 했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가 처음 오지로 떠나게 된 건 1988년, 신문 연재를 위해서였다. 88올림픽도 열리기 전인 당시 ‘중공’이라 불리던 중국에서 삼개월 간 종황무진 대륙을 답사했다.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그때 사막의 맛을 알았죠. 이후 해마다 오지를 체험하러 떠났어요. 사막이 주는 매력이 있는데, 그건 말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직접 몸으로 경험해야 해요.”

그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외곽 아보타바드에서 중국 신장 카슈가르까지 이어지는 1200km의 산악 협곡도로인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다섯 번 이상 갔다. “죽기 전에 가봐야 될 곳을 추천하라면 이곳을 추천할게요. 절경 사이사이에 역사의 현장이 있고, 중국에서 이곳을 넘어가면 파키스탄 북부로 연결돼 인도 불교사상과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이 결합된 간다라문화를 접할 수 있지요.”

그는 급기야 ‘실크로드 미술기행단’을 꾸려 작가들 십여 명과 함께 한달씩 오지 체험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를 체험해서 창작에 자양분이 되라는 의도였어요. 오지 체험을 통해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화가들도 있었죠.”

윤 관장은 ‘노을 씨, 안녕!’(2009), ‘멀고 먼 해우소(2011)’, ‘토함산 석굴암(2015)’ 등 다수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동서 문화 교류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게 바로 토함산 석굴암입니다. 자꾸 이 석굴암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걸 만드는 과정이 떠올라 서사시로 쓰게 됐다”며 “시에 관한 공부는 관찰력과 표현력을 길러준다. 일상이 바로 시”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인 윤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보다 재밌는 곳으로, 상상력을 개발시킬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역사를 알아가는 교육적인 공간으로도, 한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장소로도 미술관을 꾸려나가고 싶다. 그와 동시에 ‘우리 미술 중심 세우기, 자존심 찾기’도 충실하게 할 예정이다.

“훌륭한 미술가들이 많이 배출될수록 국격이 높아집니다. 자동차 수천 대를 팔았을 때와 점당 몇 천억 씩 거래되는 미술작품을 팔았을 때 무엇이 더 경제성이 있을까요. 해외에서는 미술경기가 활발한데 반해 우리는 미술시장이 ‘아사 직전’이라고 합니다. 전업 작가들도 ‘아사 직전’이고요. 그런 측면에서 갈 길이 머네요.”

◇윤범모 관장은...

한국미술관큐레이터 1호, 미술현장 지킴이, 전국구 미술평론가 등으로 불리며 광폭 행보를 이어왔다. 가천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등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광주비엔날레 책임큐레이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예술총감독,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장,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 한국 한국민화센터 이사장 등을 맡아 우리 미술계를 이끌어왔다. 나혜석·김복진 등 주목받지 못했던 근현대 예술가 발굴에도 앞장섰다. 저서로는 ‘백년을 그리다’(2018), ‘한국미술론’(2017), ‘나혜석, 한국 근대사를 거닐다’(2011) 등 2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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