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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구자경 명예회장, 유가 가풍에 교사 경험…3대 구본무 회장에게 전해져

故 구자경 명예회장, 유가 가풍에 교사 경험…3대 구본무 회장에게 전해져

기사승인 2019. 12. 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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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풍에 교사 생활 경험 '경영정도' 다져
능성 구씨 대종회장을 맡아 활동하는 모습
구자경 명예회장이 능성 구씨 대종회장을 맡아 활동하는 모습./제공=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은 유가(儒家)의 엄격한 가풍 속에서도 실사구시를 중시하며 번성해 온 능성 구씨 집안의 후손으로, 1925년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에서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 슬하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기의 구 명예회장은 유림에서 존경 받던 증조부 만회 구연호(晩悔 具然鎬) 공의 사랑과 외유 내강형의 선비로 유교의 전통과 신문화의 합리적 사고를 함께 지녔던 조부 춘강 구재서(春崗 具再書) 공의 가르침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형제간의 우애와 근검한 생활을 중요시 하는 가통 속에서, 특히 장남으로서 집안의 중심 역할이 가져야 할 ‘책임감’과 흐트러짐 없이 가족의 모범이 돼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구 명예회장에게 자리잡은 가치관은 경영활동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다. 실제 구 명예회장은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외부 업무를 마친 후 단 10분이 남아도 꼭 회사로 돌아온 후 퇴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이를 거의 어기지 않았다. 또 몸이 좋지 않을 때 조차도 상대방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정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중요시 여겼다. 또한 지방 공장을 방문하거나 외국 출장을 갈 때도 불필요한 의전 절차를 삼가도록 했는데, 이는 회장이 먼저 모범을 보여 허례허식을 경계하는 생각에서였다.

구 명예회장의 유년 시절 장래 희망은 교사였다. 지수초등학교를 다닐 때 과학을 접목한 농경법을 가르친 선생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 친화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과 교사의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후에 진주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희망’을 주제로 한 작문 시험에서도 주저 없이 교사로서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 구 명예회장은 경영에 전념하기 전 1944년 진주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 후 1년 과정을 마치고 곧바로 진주의 한 소학교로 발령 받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의 가치관과 경험은 장남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2018년 5월 20일 숙환으로 별세할 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구본무 회장은 회장 취임 전까지 20여년간 실무경험을 쌓았는데, 이는 구 명예회장이 본인 스스로도 회장직에 오를 때까지 20년간 현장에서 경영인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은데다, 평소 “아무리 가족이라도 실무경험을 쌓아서 능력과 자질을 키우지 않는다면 승진도 할 수 없고 중책도 맡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 기업의 회장직 승계자는 임원급으로 회사에 발을 디뎌 경영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구본무 회장은 회사의 가장 기초조직인 과장 책임자부터 단계적으로 실무를 수행함으로써 다양한 경영실무와 경영자적 리더십 및 안목을 쌓아갔다.

구 명예회장의 여러 가르침과 교훈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 중 하나는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생활자세였다. 1995년 회장직 승계 당시 구 명예회장은 故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혁신은 끝이 없다. 자율경영의 기반 위에서 경영혁신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그룹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시켜 합의에 의해 일을 추진하라. 권위주의를 멀리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이유에서든 약속을 지키고 사치를 금해야 한다는 구 명예회장의 철칙도 구본무 회장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구 명예회장은 평소 비록 푼돈일지라도 사치나 허세를 위해 낭비하는 것을 큰 잘못으로 여기고 항상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으면서 이를 실천할 것을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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