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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집 다큐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애국지사·독립운동가·정치지도자로 헌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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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집 다큐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애국지사·독립운동가·정치지도자로 헌신의 삶”

안정환 기자 | 기사승인 2019. 12. 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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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4일 저녁 1, 2부 방영…내년엔 영화도 제작

KBS 1TV는 오는 24일 오후 10시 성탄특집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획 다큐멘터리 ‘걸레 성자 손정도’를 방영한다. /사진=손정도기념사업회

애국지사, 독립운동가이며 화합의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인 해석(海石) 손정도(1882∼1931) 목사의 삶과 신앙이 TV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다.


KBS 1TV는 오는 24일 오후 10시 성탄특집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획 다큐멘터리 ‘걸레 성자 손정도’(연출 권혁만 PD)를 방영한다.


그의 철학은 ‘걸레 정신’이다. 그는 걸레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낮췄고, 걸레인 자신을 회개로 늘 깨끗하게 준비했다. 애국지사인 손정도 목사는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순교했다.


말씀과 행함이 일치되는 ‘걸레 철학’의 진실된 표본이었던 손정도 목사의 죽음은 그 당시 한인 동포는 물론 중국인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겼다.


중국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당시 손정도(두번째줄 왼쪽 여덟번째) 일곱번째는 이승만. /사진=손정도기념사업회

고문 후유증으로 49세라는 짧은 그의 생은 민족의 입장에서 큰 손실이었다. 민족운동가로서 조국 광복의 날도 보지 못하고 망명지인 타국에서 생애를 마친 그의 부음 소식은 1931년 2월 21일 동아일보에 보도돼 전 국민에게 알려졌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기독교인들은 애도했다.


손정도 목사는 1882년 평북 강서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다니면서 평양대부흥을 체험했다.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선교사로 파송돼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일제에 체포돼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1912년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 총독 가쓰라 타로의 암살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전라남도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1914년에 석방됐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그는 임시정부 의정원의 의장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선포하기도 했다.


그는 정동제일교회를 담임하면서 국내 최대의 교회로 부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유관순 등에게 항일 의식 및 애국정신을 불어 넣었다. 안창호 선생과 호형호제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섬겼다. 



안창호 선생과 호형호제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손정도 (오른쪽). /사진=손정도기념사업회

그는 중국 지린성 지린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안창호 선생과 함께 자신의 유산을 모두 처분후 땅을 구입해 동포들의 농민공동체를 만들어 민족의 이상촌을 운영했는데, 일제의 거센 탄압으로 결국 마을이 소실되고 말았다.


KBS는 “손정도 목사는 남북이 공통적으로 존경하는 목사”라며 “일생을 예수 십자가의 믿음으로 살면서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고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운동과 만주지역의 이상촌 건립에 생애를 바쳤다. 마침내 일제 고문으로 숨진 손정도의 치열한 삶을 2부작으로 방영한다”고 밝혔다.


손정도기념사업회 전용재 대표회장은 “그는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임시정부 수립과 임정시절 때 역시 남남갈등으로 서로가 반목하며 의견이 충돌되고 위기 때마다 그분의 걸레 지도력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썩은 한 알의 밀알 정신, 예수님을 닮은 십자가 지도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손정도 목사의 가족사진. 손정도 목사, 부인 박신일, 장녀 손진실(우측), 장남 손원일(왼쪽), 차남 손원태(가운데). / 사진=손정도기념사업회

이 다큐멘터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후원하고 (사)손정도기념사업회(상임공동대표 이강전 장로, 본부장 유귀순 목사)가 주관하고 있다.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가 작품을 후원했다.


손 목사의 이야기는 내년에 영화로도 제작된다. 영화에는 사랑의교회, 만나교회, 새에덴교회, 소망교회, 분당우리교회 등이 협찬하고 있다. 영화는 다큐 중심의 방송과 달리,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극영화(풀 드라마) 형식이다.


‘걸레 성자 손정도’를 연출한 KBS 권혁만 PD는 한국 교회에 큰 감동을 준 ‘손양원 목사, 주기철 목사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1996년 9월 11일 국내로 손정도 목사의 유해를 봉환했고, 12일 국립묘지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했다. 정부는 애국지사 손정도 목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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