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현장경영의 모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생애와 업적은
2020. 01. 28 (화)
  1. 춘천
  2. 강릉
  3. 서울
  4. 인천
  5. 충주
  6. 대전
  7. 대구
  8. 전주
  9. 울산
  10. 광주
  11. 부산
  12. 제주

뉴델리 21.8℃

도쿄 6.4℃

베이징 4.9℃

자카르타 31.4℃

‘현장경영의 모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생애와 업적은

문누리 기자 | 기사승인 2019. 12. 16.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구자경 명예회장7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사진>이 14일 오전 10시께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45년 간 원칙 중심의 경영으로 LG를 크게 성장시키고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의 생애와 업적은 파란만장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인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출생,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다 LG그룹 창업 초기였던 1950년 교편을 내려놓고 모기업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現 LG화학)에서 기업인으로의 길을 걷게 됐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 뛰어든 초기부터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현장 경영의 모범을 보여줬다. 직접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원료를 부어 크림을 만들고 박스 포장해 손수 판매현장에 갖고 나가고, 숙직을 밥 먹듯이 하며 도매상들을 직접 맞이했다.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 앞에서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 앞에 서있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제공=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1969년 12월 말 별세한 직후, 구 명예회장은 1970년 1월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25년 간 그의 회장 재임 기간, LG그룹은 임직원 수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다.

투명경영을 선도하기 위해 구 명예회장은 1970년 2월 그룹 모체인 락희화학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어 금성사가 전자 업계 최초로 기업공개해 주력 기업을 전부 공개한 국내 최초의 그룹이 됐다.

또 구 명예회장은 1976년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설립,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세웠다. 구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LG의 주력사업 화학·전자 부문이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현재의 LG그룹 기틀을 갖추게 됐다.

ㅣㅎ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고 구본무 회장(오른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제공=LG
1995년 2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구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로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를 이뤄냈다. 이는 그가 LG와 동고동락한 지 45년, 회장으로 지낸 지 25년 만이었다. 이후 그는 주로 충남 천안시 연암대학교 농장에서 버섯연구 등 자연과 어우러지며 자연인의 생활을 보냈다.

재계는 14일 구 명예회장 별세에 논평과 추도사 등으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고인의 별세 당일 논평을 통해 “경제계는 한국 경제성장의 산 증인이자 LG그룹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으신 구자경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15일 추도사를 통해 “산업화 기틀 만든 선도적인 기업가였다”고 구 명예회장을 추모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구 명예회장 별세 당일 “그룹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며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닦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구자경 명예회장10
구자경 명예회장 모습./제공=LG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


댓글
기사 의견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