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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모펀드, 필요악인가 ① 가파른 성장, ‘독’일까 ‘약’일까] 422조 뭉칫돈 몰린 시장…‘탐욕’ vs ‘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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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모펀드, 필요악인가 ① 가파른 성장, ‘독’일까 ‘약’일까] 422조 뭉칫돈 몰린 시장…‘탐욕’ vs ‘효율’

오경희 기자 | 기사승인 2020. 0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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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형 헤지펀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K팝이 될 수 있다.” 2011년 말, 정부는 이른바 ‘한국형 헤지펀드(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도입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이 촉매제였다. 자본시장에선 외국계 투기자본에 맞설 ‘토종 자본’을 키우자는 공론이 형성됐다. 출범 몇년 동안은 지지부진했다. 부자와 기관투자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4년 후, 정부는 진입 장벽을 대폭 낮췄고, 사모펀드 시장은 급성장했다. 중위험·중수익을 선호하는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운용전략에 기인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낳았다. 수익률을 쫓다보니 라임과 같은 일부 운용사들의 불법 행위가 발생했다. 사태가 커지자 자본시장에선 모험자본 공급이란 사모펀드 순기능 훼손을 경계한다. 토종 사모펀드의 현주소를 재조명하고,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한다.

아시아투데이 오경희, 최서윤, 장수영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사 사옥. 서울남부지검 소속 검사와 수사관이 들이닥쳤다. 신한금융투자는 1조7000억원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팔았다는 ‘사기 및 공모 혐의’를 받고 있다. 신한금투 측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혐의 입증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날 압수수색에 나섰다. 라임 운용에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헤지펀드 지원업무)를 제공한 신한금투는 금융사 중 두 번째로 많이 팔았고(3248억원), 증권사 중엔 최대 판매사다. 투자자들은 라임과 증권사 대표와 관계자 등을 사기 및 자본시장법위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빠르게 덩치를 키운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잇단 금융 사고로 위기를 맞았다. ‘422조원.’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 몰린 뭉칫돈이다. 공모펀드(285조원)의 1.5배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와 맞물려 최근 몇년 새 가파르게 성장했다. 5년 만에 순자산이 144% 급증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운용사들은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며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였다. 저금리에 길 잃은 자금들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사모펀드로 향했다.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투자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몸집이 갑자기 커지자 ‘경보음’이 울렸다. 불완전판매나 유동성 관리 부실 등 일부 운용사의 위법·부당행위 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실액만 1조원이 예상되는 라임자산운용의 대규모 환매 사태가 대표적이다. 단기간 내 급성장을 꾀한 ‘탐욕’의 산물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규제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모험자본으로 육성하면서 위험관리와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국내 사모펀드 시장 규모(순자산)는 약 422조원에 이른다. 2014년 말 173조원에서 5년 새 249조원이나 불었다. 이에 비해 공모펀드는 같은 기간 198조원에서 285조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2011년 본격 형성됐다. 금융당국은 토종 자본 육성을 내세워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했다. 초창기엔 진입 문턱이 높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엔 펀드 설립 사전보고, 차입·파생상품 같은 레버리지 현황 정기보고, 요건을 갖춘 금융투자업자에만 제한적 운용자격 부여, 일반인 최소투자한도(5억원) 설정 등의 규제가 적용됐다. 고액 자산가를 상징하는 일명 ‘강남 사모님’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공개적으로 누구나 투자가 가능한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49인 이하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운용된다. 사인(私人)간 계약으로 익명성이 보장된다.

이후 2015년, 전환점을 맞았다. 당국은 헤지펀드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로 시장을 이원화해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미국계 론스타, 엘리엇과 토종 MBK파트너스, KCGI(일명 강성부펀드) 등이 대표적인 PEF다. 라임자산운용은 헤지펀드 운용사다. 진입 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했다. 등록 요건 또한 완화했다. 자기자본 20억원과 전문 인력 3명 이상이면 사모 운용사 간판을 달 수 있다. ‘최소 투자 금액’은 헤지펀드는 5억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PEF는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췄다. 2015년 3조원대였던 헤지펀드는 지난해 말 34조원 규모로 1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19개사였던 운용사는 217개사로 급증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했다.

헤지펀드에 돈이 몰린 이유는 ‘수익률’ 때문이다. 헤지펀드란 울타리를 쳐서 투자자산을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위험에도 수익을 내는 펀드다. 주식을 중심으로 채권·파생상품·대체투자 등 다양한 투자 전략을 통해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절대 수익률을 추구한다. 2011년 이후 2017년까지 국내 헤지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이 없다.

빠르게 성장하던 사모펀드 시장은 최근 겹악재로 흔들리고 있다. 헤지펀드 업계 1위를 달리던 라임자산운용이 유동성 문제를 이유로 1조7000억원대 환매를 결정했다. 당국은 라임 사태의 원인이 운용사의 부실한 내부 통제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있다고 봤다. 지나치게 높은 목표수익률을 설정하고 무리하게 펀드를 운용했으며, 일부 직원들은 수백억 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이 투자한 PEF는 자금 모집 및 운용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운용사인 코링크PE는 아무 성적이 없었던 신생 PEF였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시장이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한 데 반해 질적 성장은 그만큼 뒤따라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신생 소규모 운용사 등 사모 운용사가 우후죽순 늘면서 리스크 관리가 미흡해졌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일부 운용사가 고수익을 미끼로 ‘묻지마 투자’를 유도하는 ‘일탈’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사모펀드 관련 사고는 부족한 사모펀드 운용 역량과 윤리 의식 결여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 PEF인 경우 막강한 자금력으로 기업을 기사회생시키는 선량한 투자자인지 아니면 경영권을 뺏는 투기꾼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사모펀드가 말썽을 빚자 금융당국은 다시 규제의 고삐를 죘다. 지난 14일 사모펀드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시장 참여자들이 운용 펀드를 상호 감시할 수 있는 내부통제 장치를 만들고, 복층 투자구조(모·자·손 구조 등) 펀드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도 더했다. 유동성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자사 펀드 간 상호 순환 투자도 금지했다.

당국의 이런 움직임에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 그간 벤처 생태계에서 자금줄 역할을 해온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라임 사태는 엄격하게 처리해야 한다”면서도 “개별적으로 사모펀드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아예 사모펀드를 못 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제도 개선에 대해 금융위는 “일부 취약한 운용 구조 보완을 위한 최소한의 규율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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