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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테너 정호윤의 한국가곡 무대,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 실감케 해

[손수연의 오페라산책]테너 정호윤의 한국가곡 무대,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 실감케 해

기사승인 2020. 02. 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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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세일 한국가곡 상설무대 2월 콘서트
테너 정호윤1
테너 정호윤이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세일아트홀에서 열린 세일 한국가곡 상설무대 2월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제공=세일음악문화재단
객석에서 본 테너 정호윤의 손은 상당히 고운 편이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인 성악은 음성 외에도 신체의 많은 부분을 사용해 감정을 전달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손은 성악가가 가장 쉽게 활용하는 표현 수단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손이 고운 성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세일아트홀에서 열린 세일 한국가곡 상설무대 2월 콘서트에서 정호윤은 미처 소리로 들려줄 수 없는 감정을 섬세한 손동작으로 표현하며 주옥같은 한국가곡들을 연주했다.

마침 우리나라에서 며칠사이 급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들 소식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열린 공연이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테너 정호윤이 서는 무대에 72석의 세일아트홀은 벌써 매진이 됐겠지만 이날 객석에는 몇 군데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공연은 금수현 작곡의 ‘그네’로 시작됐다. 정호윤의 청량한 가창과 오월 푸르른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두둥실 떠오르는 그네의 이미지는 좋은 조화를 이뤘고, 요사이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에 충분했다. 정호윤은 선명하고 서정적인 음색을 가진 리릭 테너다. 거기에 유연하게 조절되는 성량을 가졌기에 표현력 또한 풍부하다. 또한 그동안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다양하게 쌓아온 경험 덕분인지 음악가로서 깊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그네’ ‘가고파’ ‘내 마음’ 등 고전이 된 가곡과 ‘내 맘의 강물’ ‘눈’처럼 비교적 현대에 작곡된 가곡, 그리고 ‘누군가 내 마음을 적시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 역대 세일한국가곡 콩쿠르에서 입상한 최신 가곡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2020 2월 상설무대 포스터
정호윤은 각기 다른 개성과 음색으로 12곡의 한국가곡을 다채롭게 노래했는데, 미성의 테너인 그가 서정적인 곡보다는 강렬하고 호소력이 넘치는 곡에서 보다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줬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변훈 작곡의 ‘떠나가는 배’를 노래하면서, 그리 길지 않은 악곡을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춰 표현하고 애타는 정조 또한 넘치지 않게 그려내어 큰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김주원 작곡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는 하나의 오페라 아리아처럼 극적으로 노래해 서정주의 시어가 가진 뉘앙스와 감성을 더욱 살려주었다.

공연 말미에 정호윤은 한국가곡을 이렇게 많이 불러본 것을 처음이라며 반성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에게 한국가곡만으로 음악회를 꾸미는 것은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호윤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성도 있는 한국가곡 공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세일 한국가곡 상설무대는 말 그대로 상설하는 공연이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저녁 세일아트홀에 가면 대한민국 정상급 성악가들이 들려주는 한국가곡을 오롯이 들을 수 있다. 매년 그래왔듯이 2020년의 공연 계획은 12월까지 이미 다 나와 있다. 한국에서 수준 높은 한국가곡 공연을 감상하는 것, 1년 치의 공연계획을 관객들과 미리 공유하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이날 정호윤의 공연은 성악가로서 그의 진정성을 느낀 무대였다. 더불어 아름다운 우리 시어와 친근한 선율에 기대 이상의 위로를 받았다.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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