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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왜 나치에 침묵했는가’ 논란에 교황청 바티칸 비밀문서고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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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왜 나치에 침묵했는가’ 논란에 교황청 바티칸 비밀문서고 개방

서주령 하이델베르크 통신원 기자 | 기사승인 2020. 03. 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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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세르지오 파가노 주교
바티칸 교황청이 2020년 3월 2일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다는 교황 비오 12세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례를 깨고 사도문서의 비오 12세 재임 당시 기록을 조기 공개했다/출처=바티칸 교황청
교황청이 제 260대 교황 비오 12세 재위기간(1939~1958) 동안 기록된 비밀문서를 역사학자들에게 공개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2일(현지시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교황에 재임한 교황 비오 12세 시절의 비밀문건이 조기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교황청은 통상적으로 특정 교황의 재위 기간 문서 기록을 봉인한 채 재위 마지막 해 기준 70년 이후에 공개해왔다.

하지만 지난 2019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비오 1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지 81주년이 되는 2020년 3월 2일 교황청 사도문서고( 구 명칭 비밀문서고)를 조기 공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교황청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시기에 재임한 교황 비오 12세가 유대인 대량 학살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비난하는 일부 유대인과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도문서고를 개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황청은 이번 결정이 세 교황의 심사숙고 과정을 거쳤으며 의례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처음 문서 공개를 제안한 것은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였다. 이후 후임자인 베네딕토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견이 합치되면서 이번 문서 공개안이 진행됐다.

바티칸 사도문서고 책임자인 세르지오 파가노 주교는 문서고 개방에 앞서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며 “공개되는 문서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을 구하기 위한 교황 비오 12세의 노력을 입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티칸의 사도문서고의 봉인을 열고 관련된 모든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학자 중 한명인 후베르트 울프 뮌스터 대학교 교회역사학 교수는 “이번 문서공개와 학자들의 연구는 오랜 기간 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질문, ‘교황은 왜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큰 소리로 항의하지 않았으며 당시 그들은 바티칸의 높은 성벽 뒤에서 무엇을 논의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청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황의 침묵’ 논란에 대해 “비오 12세는 말을 하는 대신 구원을 했으며 로마에서 유대인의 생존을 위해 노력했었다”고 주장해 왔다.

ARD는 ‘바티칸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방관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 나올 때까지는 3~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의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모든 자료 연구 과정에서 비오 12세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도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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