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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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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서 거행

이석종 기자 | 기사승인 2020. 03. 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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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대폭 축소...안 의사 순국 의미 담은 동영상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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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서경덕 교수팀이 SNS를 통해 펼치고 있는 ‘한국사 지식 캠페인’ 중 안중근 의사 카드뉴스./제공=서경덕 교수팀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에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 의사 동상 앞에서 거행된다.

국가보훈처는 25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 순국 제110주기 추모식이 오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회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유족과 숭모회 회원 등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안 의사 최후의 유언 낭독, 추모식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초 숭모회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정부대표, 국내외 기관장 및 시민 등 300여 명을 초청해 안중근의사기념관 강당에서 추모식을 진행하는 것으로 준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간소하게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숭모회는 이번 추모식을 축소하는 대신 안 의사 순국 110주기의 의미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누리집(http://www.patriot.or.kr)에 게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숭모회는 제작된 동영상을 국내 및 일본, 중국, 유럽 등에 배포해 안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평화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고귀한 뜻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행사에 앞서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안 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날 오전 9시에 서울 용산 효창공원을 찾아 안중근 의사 묘소(가묘)에 참배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정부에 협조 요청을 하는 한편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하는 등 안중근의사유해발굴추진단과 함께 최근까지 전문가 자문, 현지 조사 등 지속적인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 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돌아와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던중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돼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그 후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 봄에는 김기룡·조응순·황병길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고 의거 당일인 10월 26일 오전 9시쯤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 헌병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고 전해진다.

안 의사는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며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그의 유해는 외부에 묻힐 경우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여순감옥 죄수 묘지에 묻혔고 아직까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안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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