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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보석 같은 ‘힐링’ 여행지...전북 완주

[여행] 보석 같은 ‘힐링’ 여행지...전북 완주

기사승인 2020. 05. 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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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오성제
오성한옥마을 오성제. 방탄소년단(BTS)이 작년 여름 이곳 소나무를 배경으로 화보를 촬영했다. 대문을 열면 청정한 자연이 반긴다.


박성일 전북 완주군수는 “내년에 완주 방문의 해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행자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는 포부다. 지자체 수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만큼 완주는 여행자에게 낯선 땅이다. 대체 어디 붙어 있을까. 지도를 놓고 보면 완주는 전주를 병풍처럼 에두르고 있다. “달걀프라이에 비유하면 전주가 노른자, 완주가 흰자”다. 지금 전주 땅 절반이 과거 완주에 속했다니 전주를 키운 것은 완주다. 그러나 여행지로서 완주는 여전히 전주의 그늘에 있다. 전주에 가보고 완주를 알게 되는 이들이 숱하다. 그런데 정작 전주 사람들은 완주로 나들이를 떠난다. 서울 사람이 자연을 찾아 인접한 청정 지역으로 향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여행/ 아원고택
오성한옥마을의 아원고택. 경남 진주의 250년 된 고택을 옮겨 놓았다.


완주가 내세우는 것은 자연과 힐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소양면에는 오성한옥마을이 있다. 총 50가구 가운데 23가구가 한옥과 고택인데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는 전주한옥마을과 딴판이다. 대문을 열면 인파로 북적이는 골목길 대신 종남산, 서방산, 위봉산 등 병풍처럼 에두른 준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있고 산책하기 좋은 단아한 호수(오성제)도 위치한다. 이런 곳에서는 한옥스테이의 감흥이 배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아원고택 같은 볼거리도 있다. 경남 진주의 250년 된 고택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풍광이 수려하고 우아한 갤러리(아원갤러리)까지 갖춰 묵어 가지 않는 이들도 수시로 찾아온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작년 여름에 이 운치 있는 마을에서 아원고택, 오성제 등을 배경으로 화보를 촬영했다.
 

여행/ 위봉산성
위봉산성. 전주 경기전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유사시에 옮겨 봉안하기 위해 축조됐다.
여행/ 위봉폭포
위봉폭포. 조선후기 명창 권삼득이 이 폭포 아래서 득음에 매진했다.


소양면의 위봉산성 역시 비슷한 이유로 눈길이 가는 곳이다. 전주 경기전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유사시에 옮겨 봉안하기 위해 1675년 축조한 조선시대 산성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이 1894년 전주부성을 점령했을 때 태조의 영정 등이 실제로 이곳에 옮겨졌다. 외침을 막기 위한 산성이라 주변 지형이 험하다. 달리 말하면 사람 손이 덜 탄 청정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동문(東門) 터 인근 위봉폭포는 2단에 걸친 높이가 무려 60m에 달한다. 여름날 물줄기가 쏟아지면 우레 같은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린다. 폭포 주변에는 기암괴석이 부려져 있고 숲도 울창하다. 조선후기의 명창 권삼득(1771~1841)은 이 폭포 아래에서 득음에 매진했단다. 산성은 총 16km에 걸쳐 축조됐는데 현재는 서문(西門) 일대 일부만 복원됐다. 성벽을 따라 잠깐만 걸어도 도심 속 경기전에서 경험하지 못한 호연지기를 느끼게 된다.

박 군수는 “완주에는 북쪽에 대둔산, 남쪽에 모악산이 솟았고 큰 호수도 다섯 개나 있다”고 했다. 대둔산과 모악산은 모두 도립공원이다. 호수 중에서는 특히 동상면의 대아호수(대아저수지)가 볼만하다. 장쾌한 풍광과 호숫가 기암절벽에 눈이 호강한다. 어릴 때부터 대아호수를 봐왔다는 완주군 문화해설사는 “비가 오면 기암에서 물줄기가 흘러 내리는데 마치 광목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자랑했다. 상상해보시라. 한낮 볕을 받아 오글거리는 물방울이 새하얀 광목에서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마음을 평온하고 화사하게 만든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계절에는 풍경이 더욱 몽환적이 된다. 이런 이유로 20km에 달하는 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권할 만하다.
 

여행/ 대아호
대아호수.
여행/ 대아수목원
대아수목원.


여기서 잠깐, 대아호수의 애틋한 역사를 곱씹고 간다. 일제는 호남평야(만경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 1920년대에 저수지를 축조했다.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농산물을 만경강 상류 인근 삼례읍에 저장했다. 삼례읍에는 당시 지어진 양곡창고가 그래서 많다. 최근 이 많은 양곡창고들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이게 삼례문화예술촌이다. 남루한 양곡창고는 미술관, 소극장, 목공소, 카페가 됐다. 삼례문화예술촌 옆에 삼례책마을도 있다. 고서점, 헌책방, 북카페가 자리 잡았고 공연 등 문화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이 건물 역시 양곡창고였단다. 일제는 삼례읍에서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만경강 철교까지 국유화해 버렸다. 삼례읍 비비정마을에는 옛 만경강 철교가 남아있다. 2011년에 폐철교가 됐고 현재는 열차 네 칸을 각각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등으로 꾸민 ‘비비정예술열차’가 자리를 잡았다. 비비정은 조선시대 때 지어진 정자다. 1998년에 복원된 정자가 폐철교 옆에 있다. 옛 선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강변 백사장에 내려 앉은 기러기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단다. 이곳에서 보는 노을이 운치가 있다. 삼례읍 역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완주의 여행지로 주목 받고 있다. 문화와 예술은 완주여행의 또 하나의 키워드다.
 

여행/ 삼례문화예술촌
일제강점기 양곡창고를 활용한 삼례문화예술촌.
여행/ 만경강 철교
옛 만경강 철교와 비비정예술열차.


다시 대아호수 이야기로 돌아와 호수에서 가까운 대아수목원은 기억한다. 수목원이 들어 앉은 자리는 1970년대 초까지 화전 경작이 이뤄졌던 곳. 험한 지형 탓에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덕분에 식생이 오롯이 보존될 수 있었다. 사계절 다양한 꽃이 만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마음을 살피며 산책할 수 있는 숲은 또 있다. 상관면의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이다. 마을이 들어 앉은 모양새가 밥공기 같다고 붙은 마을 이름과 달리 숲의 운치는 ‘명품’ 못지 않다. 숲은 1976년 산림녹화작업으로 조성됐고 영화 ‘최종병기 활’(2011)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렸다. 26만평의 대지에 편백나무, 잣나무, 삼나무, 낙엽송, 오동나무 등이 빼곡하다.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참 상쾌해진다. 숲을 산책하며 큰 숨 들이켜면 가슴 깊은 곳 까지 싱싱해진다.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자리도 잘 만들어져 있다.
 

여행/ 상관편백나무숲
상관편백나무 숲.
여행/ 화암사
불명산 화암사.


마지막으로 ‘힐링’ 명소 한 곳만 더 추가하면 경천면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다. 크지 않지만 사위가 한갓지고 가람들이 참 고운 절이다. 극락전, 우화루, 적묵당, 불명당이 ‘ㅁ’자로 마당을 에둘렀다. 극락전은 국보(제316호), 우화루는 보물(제662호)다. 이름난 큰 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없다. 소박한 살림집에 온 것 같다. 신라시대 세워진 것으로 전하지만 건축양식은 백제식이란다. 내력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람들의 빛 바랜 단청과 거뭇해진 기둥에서 묵직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은근한 아우라에 걸맞은 전설도 한자락 걸쳤다. 신라시대 어느 공주가 아파서 어느 왕이 기도를 드리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서 불명산 바위봉우리에 핀 꽃을 건넸다. 잠에서 깬 왕이 수소문해 꽃을 찾아 공주에게 먹이니 병이 나았다. 그래서 꽃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화암(花巖)’이라 했다. 가만히 보면 고즈넉한 산중에 미동 없이 고요한 가람들이 꽃만큼 곱다. 화암사가 ‘꽃’이다. 호들갑스러운 세상에 아랑곳 없이 시간과 자연에 의연하게 순응하는 적요한 절이 참 당당하다. 툇마루에 앉아 듣는 맑은 풍경소리는 마음을 참 평온하게 만든다. 이런 게 ‘힐링’이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를 소재로 시(詩)를 짓고 수필도 썼다. ‘잘 늙은 절 화암사’라는 수필에서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고 소개했다.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에서는 꼭꼭 숨겨두려, 누구에게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적었다.

완주는 보석 같은 ‘힐링’ 여행지다. 느릿하게 돌아보면 어느 순간 눈이 싱싱해지고 마음이 맑아져 있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운이 참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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