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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판결, 다시 나아갈 기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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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3. 02. 14. 12:47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인터뷰
"한국과 우리 사회 한걸음 더 나아갈 기회"
생존자 탄 씨 "진짜 사과와 정부 차원 인정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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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1968년 2월 12일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 티 탄(왼쪽)씨와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오른쪽). 권 사무처장은 평화기행팀과 함께 사건 발생 꼭 55년만인 지난 12일 퐁니퐁녓마을을 찾았다. 14일에는 또 다른 학살이 벌어진 하미마을 위령제에 참석한다./사진=한베평화재단
지난 7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는 '퐁니·퐁녓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63)씨가 지난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탄 씨의 소송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들의 첫 법적 대응이었다. 이번 판결 역시 민간인 학살과 그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는 한국정부와 각종 군인단체 회원들에 맞선 탄 씨를 도운 것은 한국 시민단체들이었다. 특히 2016년 설립된 평화운동단체 한베평화재단의 역할이 컸다. 1심 판결 선고 이후 시민·활동가들로 구성된 평화기행팀과 함께 탄 씨가 있는 퐁니·퐁녓마을과 또 다른 학살이 벌어졌던 마을들을 찾은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은 14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민간인 학살 판결은 한국이 인권국가로, 한국 사회가 다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라 말했다.

- 이번 판결이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가
"일본도 위안부 피해를 전면 부정하고,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1999년도부터 공론화 됐으니 한국 정부도 지난 20년간 단 한 건의 민간인 학살도 인정하지 않고 전면 부정해 온 것이다. 국정원도 학살 사건을 조사한 기록 일체를 공개하란 법원의 사실 조회 요청에도 끝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원고 측 변호인단이 제출한 증거를 근거로 실체를 인정한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과거사를 정부 차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에게 굉장히 큰 시사점을 줬다고 본다."

-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고 기념비적인 판결이란 평가도 있는데
"이번 판결에선 원고인 탄 씨의 청구권 문제, 소멸시효 문제 등 법리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피고 측은 당시 한국·월남·미국 간 체결된 군사 실무약정 때문에 민간인인 탄 씨가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거나, 민간인 학살이란 불법행위 발생 시점이 수 십 년 전이라 소멸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논리는 한일협정 등을 구실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등에) 계속 주장해오고 있는 논리다. 그런데 이번 1심 재판부가 청구권이 유효하다 인정하고 소멸시효 만료 주장을 기각한 것이다. 당연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등 사법의 영역에 있는 과거사 문제에 좋은 판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베트남 전쟁 문제를 뛰어 넘는 차원에서 기념비적인 판례가 될 것이다."

권 사무총장은 이번 판결이 한국 사회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해결의 물꼬가 트였을 때 공론화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 피해에 관련한 특별법 발의와 제정, 이후 정부 차원에서의 조사위원회 구성 등 한국과 우리 사회가 인권국가로,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이다.

- 이번 판결이 한국군에 대한 모욕이라는 등, 참전군인회 등의 반발이 거셌다
"한국군·참전군인들의 명예를 정말 생각한다면 잘못된 과거가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지 않겠나. 한국도 그간 정부 차원에서 참전군인들을 잘 대우해주지 못했다. 그 분들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참전군인과 피해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를 헤아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참전군인, 시민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 베트남도 과거사를 꺼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거나, 승전국이기 때문에 사과는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말하는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은 베트남 정부가 자국의 과거사 문제까지 포함해 견지하고 있는 오랜 입장이다. 단기간 내에 갑자기 변할 가능성도 없고, 한국 대통령이나 정부가 사과를 한다고 해서 바꿀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과거를 닫는다는 것이 과거를 망각하겠단 뜻은 아니다. 정말 과거를 다 잊어버린다면 얼마 전 월남전 관련해 문제가 됐던 넷플릭스의 '작은 아씨들' 방영 금지와 같은 일이 있었겠나.

베트남은 현재 국력에서 실용주의 외교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10년 후, 먼 미래에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 뒤에 어떤 말이 더 붙을지 모른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 모른다.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하는 것이 맞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간 민간 차원에서 사과를 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 정부도 보수적으로 나왔다. 베트남 정부가 보수적인 데에는 내부의 문제도 있겠지만 한국 정부의 보수적인 태도가 크게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베트남 정부도 보수적이고 원치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바라는 것은 진짜 사과, 사법부뿐만 아닌 정부 차원 인정도"

탄 씨는 이번 판결이 돌아가신 어머니·동생 등 가족과 마을 희생자들의 영혼에 위안이 될 것이라 했다. 55년 만에 대한민국의 책임과 희생자들의 '희생'이 처음으로 인정됐지만 정부는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 권 사무처장은 "항소할 것이란 이야기는 들었다. 우리도 재판을 시작할 때부터 2심,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 예상했고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마을을 찾은 시민·활동가들에게 탄 씨는 "법정에서 최종 승리한다면 피고 대한민국과 참전 군인들에게 진짜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사법부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실 인정도 함께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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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 주이선 마을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는 한베평화재단 평화기행팀의 모습./사진=VN익스프레스 캡쳐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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