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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빈푹성에 거주하는 훙(가명, 34)씨는 올해 초 페이스북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간단하고 확실하게 한국으로 일하러 갈 수 있다"는 광고를 봤다. E8 비자로 한국의 농촌에서 일하고 한달에 4500만~5000만동(약 240만~265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훙씨는 보증금과 근로자보험 등 각종 명목으로 브로커에게 2500만동(약 132만원)을 건넸지만 돈을 받은 브로커는 잠적했다.
훙씨가 거주하는 빈푹성은 한국의 지자체와 E8 비자 MOU(양해각서)를 체결하지 않아 애당초 자격대상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양국 지자체간의 MOU를 통하는 만큼 인력송출 절차도 사설업체나 브로커(중개업자)가 아닌 지역 노동보훈사회국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베트남 곳곳에선 '코리아 드림'에 목마른 훙씨와 같은 이들을 상대로 'E8 비자'를 미끼로한 취업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중부 꽝응아이성에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E8 비자로 한국에 가서 월 5000만동의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브로커의 광고에 속았다. 현지매체VN익스프레스는 16일 "꽝응아이성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브로커 G씨와 그 여동생 T씨에게 인당 1500만~5000만동(약 80만원~265만원)을 건넸고 피해 금액은 45억동(2억 380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피해자들 가운데는 한국에 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선을 팔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경우도 많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꽝응아이성 역시 E8 비자와 관련된 MOU를 체결하지 않은 지역이라 이들 역시 애초에 자격 대상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남부 허우장성에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여성이 한국 취업을 미끼로 100명이 넘는 베트남인들을 상대로 100억동(5억 3000만원)을 갈취했다가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젊은 베트남 청년들 다수는 인력송출을 통해 외국으로 나가 몇 년 바짝 고생해 목돈을 마련해 가족들 부양하고 싶단 꿈을 꾼다.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마인씨(39)는 본지에 "과거엔 일본이 인기가 높았지만 요즘은 한국이 제일 인기가 높다. 한국어 시험을 봐야 하지만 준비하는 비용도 일본에 가는 것 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베트남 노동자에 대한 처우나 물가, 생활비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이 돈을 모으기에도 낫다"고 말했다.
개인차가 있지만 통상 일본의 경우 4500만~6000만동(238만~317만원)이 드는 반면 한국은 2700~3000만동(142만~158만원) 정도만 든다는 것이 마인씨의 설명이다. 마인씨는 "옛날엔 집안에서 한명만이라도 한국이나 일본으로 일하러 가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집을 새로 짓고,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며 "지금은 (베트남도 물가가 올라)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런 사례를 보고 들었으니 특히 지방엔 여전히 코리안 드림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에서 통상 한국으로의 인력수출은 마인씨의 경우처럼 고용허가제를 통한다. 18~39세까지 연령제한이 있는데다 한국어 능력시험(EPS TOPIK)과 역량 평가까지 거쳐야 하는데도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한국이 베트남에 준 EPS 할당량은 1만5000여 명이지만 올해 치러진 1차 시험인 EPS TOPIK 시험엔 그 3배인 4만 5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등록했다. 베트남 해외근로자센터는 "14일 기준, EPS 시행 20년만에 역대 최고 응시자수"라고 밝혔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탓에 상대적으로 허용연령(30~55세) 폭이 넓고 자격요건이 비교적 간단한(농어업 종사자) 'E8 비자'에 현혹되는 것이다.
응우옌 느 뚜언 해외노동관리국 정보통신부 부실장은 "현재 단기 계절근로의 경우농어업 분야에 한해 E8, C4 비자 프로그램이 있지만 해당 프로그램(비자 발급 등)은 양국 지방정부가 직접 주관하고, 체결된 지역도 베트남 14개 성·시뿐"이라며 "해당 지역의 출신 근로자들만 대상이고 지방 노동당국이 주관해 어떠한 기업이나 개인도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E8 비자를 미끼로 한국 취업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당국은 "한국으로의 인력송출을 희망한다면 반드시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정보를 확인하라"며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