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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사는 사직하는 게 좋겠습니다”

“윤석열 검사는 사직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사승인 2013. 10. 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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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영 검사, 내부통신망에 사퇴 촉구 글 올려
임무영 대전고검 검사
아시아투데이 최석진 기자 = 국정감사장에서 직속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설전을 벌이며 ‘국정원 사건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윤석열 여주지청장(53·사법연수원 23기)의 사퇴를 촉구하는 선배 검사의 글이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검사는 대전고등검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임무영 검사(50·연수원 17기)로 평소 소신 있는 사건 처리로 후배 검사들에게 악명(?)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검찰에 따르면 임 검사는 전날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 ‘윤석열 검사는 사직하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임 검사는 윤 지청장 보다 검사 임관이 빨랐지만 자신의 서울법대 3년 선배라는 점을 배려해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윤 지청장의 절차적 정의에 어긋난 행동이 전체 검찰 조직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임 검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형(윤 지청장)과 조 검사장 중 어느 분이 더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형은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정당한 법 절차)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검찰 조직으로부터 공정해 보임이라는 외관을 박탈했다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는 윤 지청장이 국정원 사건 수사를 놓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나 조 검사장 등 상관과 의견이 충돌한 상황에서의 대응방법을 과거 면접시험에서 자주 접했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사법시험 3차 면접을 볼 때도 그랬고, 제대 후 법무부에서 면접을 볼 때도 늘 빠지지 않았던 단골 예상문제가 있었다. 바로 ‘검사가 된 후 결재자와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라며 “당시 수준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으며 고작해야 ‘내 뜻을 상사에게 끝까지 설득하겠다’정도가 다였다. 그 때는 ‘상사의 뜻을 따른다’는 답안은 정의를 포기하고 외압에 굴복한 잘못된 결정으로 취급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이 같은 문제에 직접 부딪힌 일은 몇 번 없지만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늘 생각했다. 이번에 형이 처했던 상황 같은 것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만약 지금 내게 저 질문을 한다면 상황에 따라 네 가지 정도의 옵션이 있다고 말할 것”이라며 “첫째는 끝까지 내 의견을 관철해 상사를 설득하는 방법, 둘째는 상사의 설득을 수긍하고 그 뜻에 따르는 방법, 그리고 상사를 설득할 수 없지만 도저히 내 뜻을 꺾을 수도 없을 경우에 사건 처리를 포기하고 재배당을 요구하는 방법, 아니면 그 갈등이 극도로 심할 때는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네 가지 중에 형이 이번에 했던 것처럼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방법은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는 “형은 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겠지만 형이 틀렸을 수도 있다. 적어도 그런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야 한다”며 “의견과 의견이 대립하고 어느 쪽 의견도 일말의 타당성이 없지 않을 때 나타나는 중요한 요소가 듀 프로세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법조인이니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말보다 ‘정의는 공정해야 하지만 공정하게 보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말이 더 잘 와 닿을 것”이라며 “업무처리가 공정해야 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공정하게 보이게 만들고 공정해 보이는 외관을 담보하는 것은 절차적 정의”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옳은 결론이라도 불공정한 외관을 갖고 있다면 당사자들은 그 결과에 수긍하지 않게 마련”이라며 “가령 구속당해 마땅한 사기꾼을 검사가 구속했더라도 나중에 그 검사가 고소인과 매일 술 마시며 어울려 다니고 있다면 누가 그 검사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하겠는가? 엄벌당해 마땅한 사기꾼은 순식간에 청탁수사의 억울한 피해자로 둔갑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 검사는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밟아나가는 일이 결과적으로 결론이 정당할 가능성을 높여준다”며 “오 제이 심슨 사례처럼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러한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경험에서 미국 법체계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듀 프로세스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형은 듀 프로세스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검찰 조직으로부터 공정해 보임이라는 외관을 박탈했다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임 검사는 “이번에 형이 한 일은 내게 ‘저항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며 “형은 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지휘 계통의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극복하기 위한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라고 느꼈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 시점의 검찰이 저항권이라는 표현이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불법적인 조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형은 이번 행동을 통해 검찰 조직이 저항권의 대상이 돼야 할 불법적인 조직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그 결과 국민의 신뢰는 저하됐고 검찰은 적어도 당분간은 어떠한 수사결과를 내놓더라도 상당수 국민의 불신 속에서 결론에 대한 수긍을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물론 검찰은 개혁해야 할 점이 많다. 여전히 내 한 몸은 다치고 싶지 않지만 권한은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개혁하지 않고 버틴다면 언젠가는 개혁하지 못하고 개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 어디를 찾아봐도 ‘검찰’이라는 단어나 ‘검사’라는 단어는 안 나온다. 즉 우리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수사권은 신성불가침한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이 부여해준 법률상 권리에 불과하다”며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는 순간 검찰 조직을 해체하고 수사권을 경찰에 몽땅 줘버린 다음에 경찰서에 검사를 부치시켜 영장에 서명만 하게 만들더라도 이를 반박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임 검사는 글의 말미에 “형은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통해 검찰 조직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 그동안 검찰 역사에 기여했던 공을 한 번에 뒤집어엎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과를 지으셨다. 제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당당하게 지길 바란다”라며 윤 지청장이 검찰을 떠나줄 것을 당부했다.

임 검사는 앞서 지난 6월에도 내부통신망에 ‘검찰 간부들이 공소장도 안 보고 도장만 찍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검사들의 불성실한 업무처리를 비난한 바 있다.

일선 검사들에 따르면 임 검사는 고검에 근무하는 그로부터 ‘재기수사명령’이 떨어지면 해당 검사는 ‘망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평소 수사에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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