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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느린 기차여행...시속 30km의 풍경이 건네는 위로

태백·봉화/ 글·사진 김성환 기자 | 기사승인 2017. 11. 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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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톱/ 승부역 늦가을
늦가을 승부역 풍경이 곱다. 나란히 달리는 철길 옆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딱 5분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 차분해진다.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이런 여행은 어떨까. 아주 느리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좁은 골짜기를 ‘덜컹덜컹’ 달리며 단풍무리 휩쓸고간 빈 자리를 고상하게 음미하는 여정, 기차가 지나는 작고 예쁜 간이역에는 사람의 온기가 진동하고, 그렇게 도착한 종착역에는 동화 속 세상이 느닷없이 펼쳐지는 그림 같은 여행. 쏜살 같이 흘러간 시간들을 게워내 차창 밖 풍경처럼 천천히 곱씹으면 ‘사는 것이 참 고달프다’ 싶어 가슴 먹먹해지다가도 철길이 끝나는 그곳에 내릴 때는 땅을 디디는 두 다리에 다시 힘을 주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귀가 솔깃하다면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를 떠올린다. 강원도 태백 철암역에서 경북 봉화 분천역까지 시속 30km로 달리는 아주 느린 기차다.

여행 톱/ V트레인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맑은 풍경이 마음 참 상쾌하게 만든다.
여행 톱/ V 트레인
클래식한 외관이 돋보이는 V-트레인 객차.
◇ 백두대간 협곡 달리는 낭만 기차여행

V-트레인의 ‘V’는 협곡(valley)이다. 낙동강 상류 백두대간 협곡을 달리는 관광열차가 V-트레인이다.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현재 영동선)이 개통됐다. 태백에서 생산된 석탄, 무연탄 등 화석 원료와 백두대간 일대의 목재 원료를 내륙으로 운반하기 위한 철도였다. 2013년에 이 철도에 관광열차를 달리게 한 것이다.
관광열차는 객실에서 밖이 잘 보이도록 창이 넓어야 한다. 풍경을 잘 보려면 속도가 느려야 한다. 기차의 외관도 눈길을 끌어야 한다. V-트레인이 딱 이렇다. 기관차는 백호(白虎)를 본떠 꾸며졌다. 하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다. 객차는 유럽의 산악열차처럼 클랙식하면서도 예쁘게 만들어졌다. 일부 좌석은 차창을 바라보도록 배치됐다. 객차 안에는 나무 등 땔감을 넣어 사용하는 커다란 난로가 있다. 오래된 완행열차에서나 봤던 선풍기도 달려 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음악이 흥을 돋운다.
V-트레인은 태백 철암역에서 출발해 봉화 승부역, 양원역을 거쳐 분천역까지 27.7km의 협곡을 오간다. 태백도 봉화도 한때 오지로 이름을 날렸다. 산이 험하고 골이 깊어 인적이 드물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닿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사람의 접근을 방해했던, 이 거친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눈을 놀라게 한다. 산은 태고의 모습처럼 당당하고 협곡을 타고 흐르는 물 소리는 가슴 깊이 각인될 정도로 맑고 또 날카롭다. 봄에는 신록에 눈이 부시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우렁찬 물소리에 눈과 귀가 먼다. 단풍이 내려 앉은 가을은 화려하고 눈 덮인 겨울은 고상하고 우아한 멋이 있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때면 협곡의 속살이 더 잘 보인다. 이러니 언제 가든 풍경 걱정은 안해도 된다.
V-트레인의 속도는 시속 30km다.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27.7km에 불과한 거리를 완주하는데 약 1시간이 걸린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KTX의 10분의 1이다. 창밖 풍경도 그만큼 천천히 흐른다. 풍경 놓칠 걱정 역시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맡긴다. 지나는 풍경처럼 천천히 되살아나는 시간들, 밀려오는 미련과 후회로 한바탕 몸서리치고 나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 보인다.

여행 톱/ 양원역 막걸리
양원역 옆에서 현지 주민들이 전병과 수수부꾸미, 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여행 톱/ 양원역
‘대한민국 최초 민자역’ 타이틀이 붙은 양원역의 대합실
◇ 대한민국 최초 민자역 양원역·산타마을로 변신한 분천역

V-트레인은 승부역과 양원역에서 각각 5~10분 정차한다. 정차 역 주변에는 현지 주민들이 좌판을 벌인다.
승부역에서는 곤드레 등 각종 산나물과 고추, 대추같은 농작물 등이 깔린다. 깊은 산골 기차역에서 촌부와 승객이 벌이는 흥정은 시장통의 그것 못지 않게 정겹다. 승부역 철길 끝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유난히 노랗게 물들었다. 양원역에서는 김치와 고기로 만든 전병과 수수부꾸미 등을 곁들여 막걸리 한사발 들이켤 수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얘기까지 나누고도 충분히 기차에 올라탈 수 있다.
막걸리 판매 천막 옆 조그만 창고 같은 건물을 눈여겨본다. ‘양원역 대합실’이다. 양원역 대합실은 주민들이 손수 지은 건물이다. 그래서 양원역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사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이유는 이렇다. 1955년 영암선이 개통됐지만 당시 양원에는 기차가 서지 않았다. 양원에는 원곡이라는 작은마을이 있었다. 원곡마을 주민들은 승부역까지 걸어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무거운 짐 보따리를 이곳에 던져 놓고 승부역에 내린 후 다시 돌아와 짐을 들고 집으로 가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곳에도 기차가 서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1988년 4월 드디어 기차가 양원에도 서게 됐다. 그러나 역사는 지어줄 수 없고 정차만 하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와 철도청의 통보였다. 그래서 주민들이 승강장과 대합실, 화장실 등을 직접 짓고 만들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의 탄생이었다. 낡고 허름한 건물을 살핀다. 기차 정차가 결정되던 순간 외쳤던 당시 주민들의 환호가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듯 느껴진다.
여행 톱/ 분천역
‘산타마을’로 변신한 분천역. 겨울 밤 눈이 내리면 풍경은 더 로맨틱해진다.
분천역도 볼만하다. 빨간 지붕을 이고 있는 낮은 역사에서는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건물과 마당은 커다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루돌프 인형들의 차지다. 루돌프가 끄는 썰매 모형도 있다.
분천역은 요즘 ‘산타마을’로 잘 알려졌다. 원래 무인화가 진행되던 쓸쓸한 역이었지만 V-트레인이 개통되며 낭만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테마가 산타마을이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위치, 강한 바람, 추운 날씨를 오히려 장점으로 살렸더니 사람들이 찾아왔다. 2013년에는 스위스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으며 유명세를 탔다. 강성렬 분천역 부역장은 “이전까지 하루 10명도 찾지 않던 산골 역이었지만 산타마을로 변신한 후로는 주말 하루 평균 1500~2000명이 분천역을 방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념 옆서의 사진에서 보니, 눈이 덮이고 전구들이 반짝이는 겨울 풍경은 더욱 로맨틱하다.
산골 협곡을 달려 동화 속 산타마을에 도착하면 기분전환 제대로 될 거다. 기차 타고 불과 1시간을 달렸을 뿐인데 마치 긴 여행을 끝낸 듯,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이토록 가볍고 즐겁다.

여행 톱/ V 트레인
V 트레인.
[여행 메모] V-트레인은 철암역과 분천역을 주중 왕복 2회, 주말 왕복 3회 운행한다. 운행 시간표는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요금은 철암-분천 기준 성인 8400원이다. 티켓은 코레일 홈페이지나 철암역, 분척역 등 현장에서 구매(예매) 가능하다. V-트레인 좌석은 150석이 채 안된다.
분천역이나 철암역에 내려 인근 도시와 연계한 여행을 계획해도 좋다. 코레일관광개발은 V-트레인과 주변 여행지를 연계한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낙동정맥 트레일(봉화 구간·약 9.9km)이 지난다. V-트레인 운행 시간과 잘 연계하면 협곡 트레킹과 낭만 기차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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