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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로 믿을수록 더 안전해진다

[칼럼] 서로 믿을수록 더 안전해진다

기사승인 2019. 09. 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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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열우 소방청 서울소방재난본부장
신열우 소방청 차장
신열우 소방청 서울소방재난본부장
프랭크 맥클러스키가 쓴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철학교수이면서 의용소방관이다. 그는 소방관의 세계를 겪으면서 느낀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을 읽다보면 신뢰에 관한 부분이 있다. 그는 ‘신뢰는 좋은 와인과 같다. 좋은 와인이 숙성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신뢰를 얻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방은 물과 신뢰를 가지고 불과 싸운다고 얘기한다. 책은 물은 구하기 쉽다. 그러나 신뢰를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로 끝을 맺는다. 소방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재난상황에서 누가 당신과 더불어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경험의 대답이다.

2018년 7월 2일 오전 11시경 119구급차 두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쓰러진 환자를 살리기 위해 광주 북부의 한 교차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구급차가 교차로에 진입하던 순간 우측에서 승합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충돌했고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그 순간 구급대원들은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엉금엉금 기어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구급대원의 노력에도 환자는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고 직후 구급대원들이 헌신적으로 환자를 보살피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공유되면서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에 ‘구급차 운전자를 처벌 말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다행히 경찰은 추돌사고를 낸 혐의(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한 구급대원을 불기소의견(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소방차 교통사고가 모두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현행 도로교통법에는 소방차를 긴급자동차로 분류해 우선통행 등의 특례를 적용하고 있고, 긴급자동차가 본래의 긴급한 용도로 운행 중에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는 긴급활동의 시급성과 불가피성 등을 참작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시민들은 교차로나 그 부근에서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에는 일시 정지해야 하고 긴급자동차가 우선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하는 의무규정도 있다.

하지만 소방차 교통사고가 나면 이러한 긴급자동차의 특례와 형의 감면, 시민들의 의무조항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교통사고 시에는 긴급자동차도 일반차량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만, 긴급자동차의 경우 형을 감면 받을 수 있는데 이마저도 임의적 조항이어서 형의 감면이나 면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경찰청 자료에서 형의 감면 조항이 신설된 2016년 이후 2년간 긴급자동차 사고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총 24건 중 절반인 12건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대부분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소방차 운전요원은 트라우마와 죄책감, 그리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내야만 했다.

다행히 지난 5월 손해보험협회는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을 개정해 가해자 100% 과실 판정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긴급자동차 교통사고 발생 시 긴급자동차의 과실 책임을 대폭 완화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민사법상 책임에서는 조금 벗어 날 수 있게 되었고 시민들은 긴급자동차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양보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하지만 이 기준은 손해보험사 간의 실무기준에 불과해 민사상 책임과 다르게 형사법적으로는 적용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이나 법령상의 근거마련 등 조치가 필요하다.

제도개선을 통해 소방관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응급상황에 대처하게 될 것이고, 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며, 시민들은 소방관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다. 소방관들의 정당한 행위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회적 공감이 제도적으로 보장받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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