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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개혁의 정당성, 역사와 신화 사이

[칼럼]개혁의 정당성, 역사와 신화 사이

기사승인 2019. 09. 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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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지난 한달 간 법무장관후보자지명 건으로 여론이 뜨거웠다. 그 사이 수십만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고 하니 가히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그 중심엔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과 권력기관의 충돌이 있었다고 써지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지금 이슈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그 핵심을 비껴나 있는 듯싶다. 세간의 관심은 후보자에 대한 자질검토보다는 그 딸의 자기소개서와 표창장에 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포털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클릭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후보자의 자질검증에서 자녀의 이슈를 부각시켜 교육의 공정성과 기회균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려서 읽었던 동화가 생각났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어떤 작은 왕국의 왕은 온 나라의 아이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나눠준 꽃씨를 일 년간 키워, 꽃을 가장 아름답게 피워온 아이에게 큰 상을 준다는 방을 붙인다. 약속된 시간이 되어 왕국의 모든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궁궐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아름답게 가꿔온 꽃으로 왕궁은 꽃동산이 되었다. 그러나 왕의 낯빛은 흐리다 못해 수심이 가득 찼다. 이리저리 왕궁을 돌아다니며 가장 아름다운 꽃을 찾는가 싶던 왕은 궁궐문밖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왕이 왜 울고 있냐고 물으니 어린 소년은 씨앗을 심고 아무리 열심히 돌봐도 꽃을 피울 수 없어 빈 화분만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왕 앞에 받칠 수 없어 울고 있다고 했다. 이내 왕은 껄껄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왕좌로 돌아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 이가 여기 있다고 선언한다. 이후 소년은 공주와 결혼하고 왕국을 물려받았다는 해피엔딩이다.

꽃씨의 정체에 대해 동화에서는 친절하게 밝히고 있다. 왕이 나눠준 꽃씨는 꽃을 피우기는커녕 싹도 틔울 수 없는 겉만 멀쩡한 죽은 씨앗이었다. 독후감쓰기용 동화책의 부록에 친절하게도 해제가 남겨져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진실한 자는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재미있게 읽은 동화책이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은 내용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독후감쓰기의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었다는 표현이다. 반전의 구도로 내용을 전개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뽑아내 마무리를 장식하는 글을 쓰면 백일장에서 어른들은 상을 주었다. 그게 좋아 교내건 교외건 백일장이 있으면 손을 번쩍 들고 참가를 자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필자의 독후감은 꽃씨가 피지 않은 정직한 빈 화분이 아니라 화사하게 장식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글이었지 않을까 싶었다. 상장을 받아들고 쪼르르 달려가 부모님께 칭찬을 구하던 모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사실 교육의 공정성문제가 뜨겁게 여론을 자극하고 사회의 역린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계층이동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함축적인 표현이 ‘흙수저’와 ‘헬조선’이다. 이미 유행이 지난 이들 신조어 간엔 상관관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저소득층 청년세대가 품고 있는 포기의 선언이 흙수저다. 한편 고착화된 사회의 저간에 흐르는 묘한 기류엔 ‘리셋’의 심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헬조선이다. 지옥이라는 영어표현과 구한말신분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단어를 조합했다. 또한 중의적으로 청년세대가 직면한 꽉 막힌 현재의 상황이 망해, 리셋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간에 깔려있다.

그런데 이들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시점은 ‘이명박근혜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작금의 교육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만에 대해 억울함이 있을 것도 같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양산한 것이 과거보수정권에서 기획된 일이며, 지금 역시 문제가 되고 있는 학생부종합전형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입학사정관제도를 박근혜정부에서 간소화한 것이 일명 ‘학종’이며 서울대가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바 있다. 이후 여러 대학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었으나 수험생들과 학부모는 물론일선고교의 지도교사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 개혁하기 위해 진보성향 교육감이 수장인 지역의 교육청들 중 자사고 폐지의 수순을 밟고 있는 곳도 있다. 그리고 학생종합전형에 대한 폐해를 손질해야한다는 여론은 이미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로 확산돼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법무장관후보자의 딸이 자사고 출신에 학종으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유명대학에 입학하고 지금 의학전문대학원까지 진학해 있다고 하니, 평소 공정성을 언급하던 후보자의 소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눈총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개혁의 주체가 될 사람의 자식이 개혁대상인 시스템에서 이미 큰 혜택을 받은 수혜자이니 그 정당성을 의심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다시 동화로 돌아와, 어린 마음에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왕의 말을 믿고 꽃씨를 열심히 키우려다 싹이 트지 않자 불안감과 두려움에 쌓였을 대다수 아이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랬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심심치 않게 어른들로부터 시험당하고 상처받던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이입이었다. 왕이 준 씨앗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절망했을 아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궁금했고, 대다수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왕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겨야한다고 가르치고 스펙을 쌓으라고 독촉하고 나선 돌변해서 왜 그랬냐고 묻는 꼴이 되었다.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 왕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동화는 기본적으로 잔인하다.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하라고 요구한다.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영웅서사의 주인공들은 통과자체가 불가능한 테스트를 통과한다. 동화 속 주인공 소년처럼 공주와 결혼해 왕국을 물려받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눈을 찌르고 왕좌에서 내려와 허허벌판을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와 달리 역사는 비극도 희극도 인간이 저지른 일의 결과라 그 의미와 의의가 무엇인지 당대에 평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사에선 과거의 희극이 현재의 비극이 되기도 하고 현재의 비극이 미래의 희극이 되기도 한다. ‘모든 역사가 현대사’인 이유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신화와 역사의 차이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혁의 소명을 부여받은 지도자가 기득권의 저항과 세간의 평가가 두려워 피하기만 한다면 역사는 그를 패배자로 기록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개혁실패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숱하게 보아왔다. 이제 다른 역사를 써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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