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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 ② 스탈린 앞잡이잖아!!!

<카툰> ② 스탈린 앞잡이잖아!!!

최영재 기자 | 기사승인 2015. 12. 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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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북한주민과 한국내의 탈북자 3만여명은 김일성 주석이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과 만주 국경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일본과 ‘10만여회 전투를 벌여 백전백승하고 자력으로 1945815해방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1940년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는 백두산 밀영을 근거지로 국내 진공작전을 가열차게 벌여 해방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교육받았다.

 

국내 중고교 역사교과서와 대다수 역사학자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를 인정하고 있다. 다수의 한국 역사학자들은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과는 아무 관계 없이 자력으로 항일빨치산 투쟁을 벌였고, 그 투쟁경력으로 북한에 들어와서 정권을 세웠다고 믿고 있다.

 

반면 우리 역사학계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항일투쟁경력도 미미했는데 미국의 꼭두각시로 남한에 들어와서 실권을 잡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스탈린은 대독일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소련군 점령지역인 동유럽과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간섭하고 꼭두각시를 만드는 정책을 폈다. 특히 직접 개입한 곳이 동유럽의 폴란드, 헝가리였고 극동아시에서는 북한이었다.

 

당시 폴란드의 브레스라브벨트, 헝가리의 라코시, 북한의 김일성(김성주金聖柱) 등은 각기 소련에서 양성되고 소련군의 손으로 움직인 앞잡이였다. 이 가운데 브레스라브벨트, 라코시 등은 각각 자국의 공산당원이었고, 자국 내에서 투쟁한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성주는 한번도 조선공산당원이었던 적도 없었고 조선 국내에서 투쟁한 경력도 없는 엉터리였다. 특히 그는 1940년부터 1945년 시기 백두산 밀영에서 해방을 앞당기는 결정적 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수천km 떨어진 하바로프스크의 소련 첩보부대에서 독립운동과는 관계 없는 간첩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 시기 김성주는 국내 진공이 아니라 소련군에서 장교로 출세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하는 문제 인사였다. 1945년 해방 뒤 미 국무부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껄끄러운 존재인 이승만의 귀국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는 소련군이 자신들이 좌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중국 연안파 공산주의자 그룹으로 이뤄진 조선의용군의 귀국을 방해하고 귀국 뒤에는 무장해제한 것과 동일한 이해관계였다. 남한의 미군정청 사령관(1945~1948)이었던 존 리드 하지는 이승만과 사사건건 충돌했고 김규식을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 추진하려다 실패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는 이런 사실을 부각하지도 서술하지도 않고 있다. 여기서 김일성 바로 알기시리즈를 계속하는 이유가 나온다.

  

/글·그림=당근포스트 , 원작=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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