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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원래 한 뿌리”

*“한국과 일본은 원래 한 뿌리”

기사승인 2011. 05. 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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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수학계 거목, 한일고대사 달인, 김용운 석좌교수
신대원 기자] “일본이 이번 대재난으로 어려울 때 한국사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힘내라고 진심어린 격려를 했습니다. 이를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계기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수학자이면서 민족마다 독자적인 원형이 있고 이 원형이 역사를 전개시킨다는 원형사관(原型史觀)으로 유명한 김용운 단국대 석좌교수가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 내내 가장 강조한 대목이다. 김 교수는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어번 대학원, 캐나다 앨버타 대학원에서 수학으로 각각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수학과 교수, 수학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수학계의 거목이다.저서 ‘인간학으로서의 수학’ 등을 통해 수학자로서 국제적인 명성도 얻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일본인과 한국인’, ‘한일 민족의 원형’,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 등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나라였으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뿌리는 같다는 주장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인터뷰는 때 마침 리 션, 하세가와 도시카즈(長谷川壽一) 도쿄대 교수들이 일본어가 한국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영국왕립학회보에 실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뤄졌다. 김 교수가 수년 전 주장했을 때에는 다소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내용이었지만 어느새 일본과 유럽 학계 주류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는 두 시간여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일관계와 한일 고대사에 대해 보다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해 아쉽다고 할 만큼 역사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교수가 수학자이면서도 일생동안 역사문제를 천착해온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공부한 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김 교수가 극단적인 민족주의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04년부터 6년간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을 맡아 한일 양국의 인적, 문화적 교류 확산에 기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에는 일한문화교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 강남에 자리한 한국수학문화연구소 사무실 구석구석에 수북하게 쌓인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수학책과 역사책들은 이러한 김 교수의 삶을 압축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인터뷰=하만주 정치·행정 에디터]

일본이 3·11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로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일본, 일본인들이 받는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 일본과 일본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한국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뿌리가 같지만 자연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국민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활화산만 30여개가 됩니다. 일본 열도에서는 늘 어디선가 지진이 있고요. 이 때문에 일본사람들은 재난에 익숙합니다. 일본의 미학도 죽음의 미학입니다. ‘앗사리(あっさり:깨끗하게, 산뜻하게)’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앗사리’ 포기해버리는 게 미학입니다.

한국의 경우 심청전처럼 바다에 빠지더라도 살아 돌아오고 한오백년 살고 싶다는 노래가 사랑을 받지만 일본은 벚꽃처럼 질 때는 깨끗하게 죽는 ‘사쿠라(さくら:벚나무, 벚꽃) 미학’입니다. 한국은 재난이라는 게 홍수와 태풍 정도인데 며칠 지나면 물이 빠집니다. 복원력이 강하죠. 이 점에서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다릅니다.

일본사람은 신풍(神風)을 ‘가미카제’라고 해서 신이 내려준 바람이라 하지만 한국사람은 끼와 연결시켜 ‘신바람’이라고 합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거죠.
특히 원전 방사능 유출은 일본으로서도 과거와 전혀 다른 재난입니다.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복구가 안 된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일본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쇼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짐작하기 어려운 쇼크일 것입니다.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일본이 물리적인 복구는 상당히 빠를 겁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번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을 계기로 큰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큰 방향을 전환해왔습니다.

메이지유신 때는 왕정을 복고시키고 문명개화로 나아갔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는 다이쇼데모크라시(大正민주주의)를 통해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다이쇼데모크라시 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경향이 있었지만 결국 군국주의로 흘렀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경제강국으로 방향을 전환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죠.

이번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도 앞서 얘기했던 세 차례에 못지않은 큰 충격을 줬기 때문에 일본은 방향전환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이 모색 가능한 방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선 우경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동대지진 때도 조선사람 6000명을 죽이고, 다이쇼데모크라시를 거치며 군국주의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을 죽이는 등 우경화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보수색채가 강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가 연이어 도쿄도지사로 당선된 것만 봐도 일본내 우경화 흐름은 분명합니다.

이번에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이 있고 나서 일본이 외치고 있는 구호가 ‘간바레 니혼(がんばれ 日本 : 힘내라 일본)’ 아닙니까? 일본만, 일본사람만 간바레지 이웃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방사능 유출 관련 정보를 바로 이웃에 있는 한국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도 일본 중심주의 사고로 뭉쳐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우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국제화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 방사능 문제는 일본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일본도 어차피 피해복구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제화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경화와 갈등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한일간의 친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이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 한국과 일본은 같은 뿌리, 같은 나라였습니다. 이것이 갈라지게 된 것은 663년 백제와 왜 연합군과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 사이의 백강전투 이후입니다. 그때 일본인구가 500만밖에 안됐는데 전투에 3만2000여명이 동원됐습니다. 결국 패배한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신라인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쭉 이어지면서 임진왜란이나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일본이 이번 대재난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한국사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힘내라고 진심어린 격려를 했습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도 애도와 위로를 표시하고 성금 모금에 나섰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 자체는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내면에 우월감이 깔려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세대까지는 일본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일본내 한류문화도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를 비롯한 한국사람들에게서 우월감이 생긴 것입니다. 이를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계기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90여년 전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사람이 6000명이나 죽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사건이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고 한일간 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던 영향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상사가 있을 수도 있었죠. 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본사람들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면 일본의 우경화도 막을 수 있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일관계가 모처럼 좋아질 계기를 맞았지만 또 다시 독도문제가 불거지면서 퇴색된 느낌이 드는데요.

▶ 한국사람들이 대범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모처럼 동정심을 발휘했고 한일관계도 좋아질 뻔 했는데 일본이 왜 하필 이 때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를 통과시키느냐고 불만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관료시스템 속에서 이미 정해진 절차였지 정치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는 독도 얘기만 하면 애국자가 되는 이상한 풍조가 있습니다. 진짜 애국은 그런 것이 아니죠. 해방 직후에도 목소리 높여 일본이 나쁘다하면 애국자가 됐는데 이제는 일본을 동정할 정도의 당당한 나라가 됐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독도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독도문제에 지나치게 대응한다면 오히려 일본이 어려운데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외교를 강화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태도로 가야 합니다. 양국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서로 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김용운 석좌교수는

수학자이면서도 40여년간 한일고대사 문제를 연구해온 온 김용운 건국대 석좌교수가 최근 ‘「日本=百濟」說 ― 原型史觀でみる日本事始め(일본=백제설-원형사관으로 본 일본사의 기원)’을 일본에서 발간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지난해 국내에서 낸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정부 혁명 쿠데타로 얽힌 일본 천황가’의 일본어판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 천황가가 원래 한반도 출신이며 만세일계(萬世一系)로 내세우는 천황가 계보도 가야계의 스진왕조, 웅진출신의 오진왕조, 한성백제 출신의 게이타이 왕조 등 세 왕조로 나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또 원형을 외면하면 아무리 역사인식을 외쳐도 자국의 것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며 한일간의 근본문제는 서로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은 같은 뿌리, 같은 나라였으며 일본 천황은 백제사람”이라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헤이세이 천황이 자신에게는 무령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했는데 일본 주요 언론들은 외면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라는 병과 일본이라는 병은 알고 보면 하나의 병”이라며 “각각의 병을 깨고 하나의 병 속에 놓여야 한일간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이 그렇듯이 이웃한 나라들 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들은 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것이나 서로 왕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다들 인정한다”며 “일본도 한국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9년에는 백제의 이두표기가 일본으로 전해지고 일본식 훈독법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그리면 삼국통일 이후에 한국어와 일본어가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일왕’의 호칭과 관련, “일본사람들이 천황이라고 하는데 굳이 일왕이라 할 필요도 없고 외교적으로도 실례”라면서 “한일 친선관계를 고려할 때 작은 부분을 가지고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며 ‘친황’ 표현을 고수했다.

                                                                                           사진=이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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