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중견건설사 “설 땅이 없다”

기사승인 2008. 10. 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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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사업 비중 높아 ‘연쇄부도’ 공포 확산
-신규 사업 보류ㆍ자산매각 등 경영 보수화
-‘일단 팔고 보자’…내년엔 사업할 땅 없을 듯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지면서 가장 큰 충격파를 맞고 있는 업계요? 당연히 중견건설사죠. 경제위기 우려감에 집값은 나날이 하락하고, 미분양으로 인한 자금난에 해약 요구까지 급증하지,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네요.”(중견건설사 A모씨)

건설사 유동성 위기설에 미국발(發) 금융쇼크까지 가세하면서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건설사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자금력이 탄탄한 대형 건설사들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간다’고, ‘중소 건설사들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래저래 수혜를 입고 있지만, 건설산업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업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곱씹어야 하는 ‘샌드위치 계층’으로 전락해 버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 위기가 한층 더 확산된다면 그 시발점은 지방 미분양 물량이 많은 중견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와 그에 따른 부도 도미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우려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중견건설사들의 자금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미분양 누적으로 투입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데다 국내ㆍ외 금융시장 경색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마저 막히면서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위험 회피에 집중하고 있는 중견건설사들은 기존 사업의 내실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을 자제하는 등 이른바 ‘보수경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가 하면, 자체사업 부지 등 회사 보유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벽산건설의 경우 주거사업의 위험성을 보완하고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주택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술 및 실적 확보를 통한 환경ㆍ에너지 등 신수종 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해외사업의 경우 무리한 사업 확장 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괌ㆍ베트남 사업에 집중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월드건설은 올해 신규분양 사업에 나서지 않는 대신 미분양 해결과 지난해 10월께 분양을 시작한 울산 매곡동 ‘월드시티’ 분양에 역량을 강화해 재무적 부담에서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우림건설도 지난해 지방에서 신규 분양한 아파트 분양률이 저조하자 상대적으로 분양 성적이 양호한 지역을 선별해 공급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난 6월엔 서울 독산동 도하부대 개발PF사업을 롯데건설에 넘겼고, 김포 한강신도시, 평택 용이동 일대 사업을 매각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인천시 학익동 주택사업 시공권을 매각한 후 경기 파주시 조리읍 아파트 사업용지도 매물로 내놓은 대주건설을 비롯해 월드건설, 현진 등도 국내ㆍ외 부동산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숨고르기’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대형사와 달리 중견사들은 쌓아 놓은 현금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운용하는 공격적 경영을 할 수 있는 여력도 부족해 탈출구가 없는 실정”이라며 “가뜩이나 미분양 누적으로 힘겨운 판에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속빈 강정’에 불과해 지방 미분양, 특히 중대형 물량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부산시 금정구 장정동 땅을 매각했다는 W사 한 관계자는 “중견사들의 경우 현금유동성 확보가 관건으로 미래를 내다볼 여유도 없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알짜 부지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다간 내년쯤엔 사업할 땅이 하나도 없을 듯 보여 현재도 미래도 모두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대한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가 주택 외에 플랜트, 토목 등으로 사업이 다각화돼 있는 것과 달리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중견건설사들은 대부분 주택사업 비중이 높아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시장 위기의 타깃이 중견업계에게 쏠릴 수 있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고 속내를 내비췄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지금은 건설사뿐만 아니라 모든 업체들이 자금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으로 신규 사업은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업계 불황으로 중견건설사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미분양 물량을 꾸준히 해소해 나간다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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