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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숲에 물으니 다 그런 삶이라 하더군요

[여행] 숲에 물으니 다 그런 삶이라 하더군요

기사승인 2011. 09. 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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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축령산 편백나무숲에 들다
50년생 편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숲길을 걷는 이경숙 산림치유지도사. 그는 탐방객들에게 이 길을 '침묵의 길'이라고 소개하면서 발자국 소리마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아시아투데이=양승진 기자] 숲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어쩌다 숲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손님에 불과하다.

잠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었다 가는 것이지만 숲은 어머니 같이 무한정 베풀기만 하니 그 고마움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어쩌면 발자국 소리마저 그들에겐 공해일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낮추고 그저 숲이 허락한 만큼만 받으면 된다.

전남 장성의 축령산(621m)은 좀 독특하다.

숲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숲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숲을 사랑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역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치유를 준다는 점에서 다분히 교훈적이기도 하다.

숲으로 돌아갈 인생들이 잠시 들렀다 가기만 해도 큰 기쁨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숲이다.
산이 사람을 만드는 곳으로 가보자.


축령산 편백나무 숲을 찾은 탐방객들이 나무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드러난 뿌리마저 숲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축령산 숲의 거름이 된 임종국

전남 장성의 축령산을 이야기할 때는 임종국(林種國, 1915~1987) 선생을 비켜갈 수가 없다.

생전에 그를 본 적은 없지만 숲에 가면 그의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임종국 선생은 생전에 “나무를 심는 일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과 같다”는 믿음을 가진 분이다.

온 나라가 민둥산 천지였던 6.25 전쟁이후 20년 동안 570ha의 산야에 무려 253만 그루나 되는 나무를 손수 심었다.

돈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가산을 쏟아 부으며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숲을 가꿨다.

그러던 어느 날 가뭄이 들어 나무가 고사하자 피멍든 어깨로 수만 번 물을 길어 그들을 적셨다. 주변에선 미쳤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지금 서 있는 편백나무들은 그 분의 고통을 먹고 자란 탓에 이제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찼다.

임종국 선생은 ‘적지적수(適地適樹)’에도 능해 어느 땅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훤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도 사람처럼 어떤 교육(땅)이 필요하고 기후(미래)까지 내다보는 안목을 지녔다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임 종국 선생은 일생 동안 나무만 심었다. 그런데도 돌아가실 때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는 게 유언이었으니 그 자신이 목신(木神)의 환생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무 심는 게 애국”이었던 선생은 숲다운 숲이 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순창 선영에 모셔졌던 선생은 지난 2005년 축령산 중턱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13년생 느티나무 밑에 수목장이 돼 이 숲을 보살핀다.

이제는 헤어짐 없이 그 자신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된 셈이다.


탐방객들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숲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40~50년생 편백나무.삼나무 이젠 1200ha

축령산 숲길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비롯된 숲이지만 이젠 스스로 가꾸고 뻗어나갈 줄도 안다.

지금은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들어차 1200ha 규모로 커졌다.

임도를 따라 적당한 크기로 서 있는 편백나무는 아파트 6층 높이인 18m나 되고 한 낮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잎이 그늘을 드리운다.

축령산 편백나무, 삼나무 군락은 모두 네 군데로 나눠져 진.출입이 자유롭다.

모암, 대덕, 금곡, 추암마을 등으로 나눠진 축령산은 총 19km의 둘레길(6시간40분 소요)이 조성돼 있다.

숲내음숲길(2.2km, 1시간10분), 산소숲길(1.9km, 1시간), 건강숲길(2.9km, 1시간30분), 하늘숲길(2.7km,1시간20분)과 산책길보다는 좀 힘든 등산로(8.5km, 4시간10분)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추암~대덕마을 구간이다.


50년생 편백나무는 한 아름이 넘는다. 곧은 나무는 보기만 해도 기운이 넘쳐난다.
추암마을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알싸한 편백나무 냄새가 코를 찔러 나도 모르게 자꾸만 쫓아가게 된다.

어린 편백나무들을 지나 편백 맨발길과 숲 내음길을 따라 걸으면 제대로 된 삼림욕이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장 왕성하게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들은 미끈하게 뻗은 각선미를 내보인다.

안아보면 한 아름은 더 되는 덩치에 그 자체가 기둥이고 잎들은 마치 지붕 격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곰팡이 해충에 저항하기 위해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와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은 그저 덤이다.

그것도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소나무, 향나무, 측백나무의 4배나 되고 삼나무, 구상나무 보다도 훨씬 많다.

그래서 축령산을 찾는 사람들은 뭔가에 지친 사람들이 많다.

병마와 싸우기도 힘든 아토피나 암환자 등이 찾으면서 축령산은 자연 치유의 숲이 됐다.


삼삼오오 모여 편백나무 숲길을 걷는 탐방객들. 이 숲길에 들어서면 피안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루에도 40~50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인근 마을에 방을 얻어 놓고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들은 일정기간 이 숲을 거닌 후 진찰해 보면 호전되는 것이 눈에 띌 정도 라고 말한다.

일산에서 왔다는 임00(63) 씨는 “금곡마을에 방을 얻어 놓고 산을 찾는 데 이곳에 들어서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다”며 “치유의 숲이라는 말 자체가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일정한 간격으로 걷다 쉬다를 반복하고 크게 쉼 호흡을 하는 등 나름대로 걷는 방법도 터득하게 됐다고 귀띔한다.

또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피톤치드를 공급한 교실이 일반 교실보다 훨씬 더 학습효과가 높았다는 게 숲 해설가의 설명이고 보면 편백나무 숲은 일반 숲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 장성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은 따로 있다.

모암~우물터 구간으로 3.8km 숲길은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

이 숲길엔 노란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탐방객들을 유혹한다.


◇여행메모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장성IC로 나와 국도24호선(상무대 방면)을 타고가다 군도8호선으로 접어들면 축령산까지 30분이면 된다. 철도는 서울 용산역에서 장성역까지 KTX(2시간30분), 새마을호(3시간), 무궁화호(4시간)가 운행되고, 고속버스는 서울~장성이 1일 3회(3시간30분) 다닌다. 서울~광주를 이용한 후 직행버스를 타도 된다. 장성군 내에서 운행하는 택시는 장성읍(061-393-8000), 북하면(061-392-9977)이 있다. 장성군 문화관광과(061-390-7224)


축령산 탐방로 입구에서 파는 편백나무를 이용한 제품과 피톤치드 원액.
숙박은 북하면에 백양관광호텔(061-392-0651), 은혜가족호텔(061-392-7200)이 있고 장성읍과 삼서면, 북하면 등에 모텔이 많다.

음식은 남도 한정식집이 유명하다. 장성읍내에 있는 풍미회관(061-393-7744), 한국의 집(061-393-6767), 에루화(061-393-5100) 등이 전라도 음식의 백미를 보여준다.


전라도 음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성에 있는 한 한정식집의 삼합. 
장성에는 축령산 편백나무숲 외에도 둘러볼 곳이 많다. 전남 들녘의 젖줄인 장성호와 남창계곡, 홍길동 테마파크, 필암서원, 입암산성, 금곡연화촌 등이 산재해 있다.
인근에 위치한 담양이나 함평, 영광 등과 연계해 둘러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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