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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요절 꼽추화가 손상기 “가난·외로움 예술로 승화”

39세 요절 꼽추화가 손상기 “가난·외로움 예술로 승화”

기사승인 2012. 04.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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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예술가의 초상](11)화가 손상기
39세에 세상을 떠난 천재화가 손상기의 생전 모습


[아시아투데이=전혜원 기자] “동덕미술관 한 번 가보소. 손상기라고, 시커먼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소. 되게 좋소. 세계적으로 그런 그림 드무요.”

재작년 세상을 떠난 ‘통영의 피카소’ 전혁림 화백은 80년대 초반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모더니스트’라 불리는 전 화백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던 손상기(1949~1988)는 39세에 요절한 꼽추화가로, 요즘 들어 그의 예술세계가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지요.

손상기는 세 살 때 앓은 구루병으로 평생을 척추장애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가난과 외로움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킨 작가입니다.

미술뿐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났던 손상기는 이미 20세때 자신이 40세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죽기살기로 그림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8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공작도시’ 시리즈지요. ‘공작도시’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의 변화돼 가는 모습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노인,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소박하지만 강한 필치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손상기의 작품은 스케치와 글을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그는 살아생전 “나는 언제나 글을 쓰고 난 후에 그림을 그린다. 내가 느낀 감정을 정직하고 설득력 있게 기록해 이미지의 집적을 꾀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의 이 집약은 회화와 문학의 접근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는 ‘공작도시’를 그리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장애물이 많은 도시/나에게 삶은 벅차다/육교, 지하도, 넓은 건널목 그리고 소음/한겨울의 에이는 추움, 밀리는 사람들의  표정 없는 얼굴들 모두가…/나처럼 생긴 모든 자의 어려움이리라/휠체어에 의지한 자/터질 듯한 러시아워의 버스, 버스길/정복되지 않은 것의 정복을 꾀한 것.”

손상기의 '공작도시-따스한 빛'

1949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손상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대회에서 입상하며 1981년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이후 1983년 엄중구 관장을 만나면서 작고 때까지 그의 후원으로 매년 개인전을 개최하게 됐지요. 

1988년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몸의 모든 기관이 정상인의 30%에 불과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랐습니다.

특히 꼽추라는 신체적 장애로 느낀 과절과 그의 예술세계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애를 작품과 지나치게 연결시키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후미진 골목길의 풍경을 그린 그의 ‘공작도시-따스한 빛’, 차디찬 매트리스 위에 덩그러니 놓인 지팡이 하나를 그린 ‘영원한 퇴원’, 봇짐을 머리에 인 어머니와 어린 아이를 그린 ‘나의 어머니-일상’ 등은 보는 이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손상기의 작품들은 이번에 K옥션이 25일 신사동 사옥에서 실시하는 ‘엄 컬렉션과 함께하는 스페셜 경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손상기의 '영원한 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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