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지역 왜의 실체 규명, 역사왜곡 바로잡는 출발점

기사승인 2008. 10. 01. 18: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상호 교류 속에서 나타난 산물을 곧바로 영토와 국가의 증거로 보는 사관에 문제가 있습니다."

홍성화 동서남북포럼 사무처장은 일본의 통치력이 한반도 남단까지 미쳤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고대유적지를 답사해 왔다. 그의 표현대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오랜 답사 끝에 그는 "한일 두 나라가 교류의 산물을 지배와 피지배의 증거로 보는 뿌리 깊은 사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으로써 역사왜곡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가 얻은 믿음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만 발견되었던 전방후원분과 형태가 유사한 무덤이 한반도 일부,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났습니다. 누가 만든 것일까요. 영산강 유역은 지형이 개방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중간 지점에 있어서, 고대에는 동북아시아 교류의 허브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그렇기에 백제, 가야, 신라, 심지어는 왜의 영향을 받은 유물도 나온 것이죠."

후대의 인식으로 고대를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흔히 근대와 현대의 인식으로 고대의 사실까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려고 한다. 홍성화 씨는 이런 모습은 일본 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임나일본부를 해석한 것을 보아도 현대의 지방자치제도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지역주의와 맞물린 역사 왜곡의 한 단면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백제가 영산강 유역과 가야의 소국을 직접 통치했다고 하면 막상 현재의 지역주의가 작용해 역사의 진실을 흐리게 만듭니다."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백제의 영향력을 배제하면서 영산강 유역에 별도의 국가가 있었다는 설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향토사학계를 중심으로 임나일본부를 부인하는 논리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흥과 여수 부근에도 백제와 다른 왕국이 있었다는 설명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창녕, 고성, 합천, 김해 등 소도시마다 국가가 하나씩 있었다는 것으로 고대 한반도 남부는 소국으로 갈가리 나눠져 있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남부에서 왜계의 유물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는 4~6세기 일본열도 전체를 통치한 강력한 야마토 정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한반도 남부에 나타나는 왜계 유적에 대해 야마토 정권의 영향력을 배제하면서 제대로 된 고대사 해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마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는 것 같아 회피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면 오히려 일본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한반도에 나타난 왜계 유물이 고대 한반도 남부까지 분절국가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한 백제가 일본과 문물을 교류하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 한반도계 유물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 일본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국가라는 결론으로 나아간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유물이 출토됐다고 도래인이 국가를 세웠다고 확대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한반도에서 일본 계통의 고분이 발견됐다고 해서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지요."

독도 문제나 교과서 왜곡 등 현재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간의 갈등의 연원이 고대사로부터 출발한고 보는 그는 두 나라의 과도한 갈망이 역사왜곡을 낳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사실과 이성을 근거로 이를 명확하게 해결하고 나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