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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히스테릭스, 21세기형 LA메탈로 무장한 로큰롤 깡패들

[인터뷰] 더 히스테릭스, 21세기형 LA메탈로 무장한 로큰롤 깡패들

기사승인 2014. 09. 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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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EP앨범 '테이크 잇 슬리지(Take it Sleazy)' 발매…'불량 로커' 느낌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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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 히스테릭스 조명찬(왼쪽부터), 닉, 김세헌, 정유화, 이창현
80~90년대 음악계를 풍미했던 LA메탈이 어느새 구식 음악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왔다. 여전히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머틀리 크루(Motley Crue)·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 등을 필두로 한 수많은 메탈 밴드의 명곡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근 몇 년 사이 새롭게 결성된 밴드들 중 그와 같은 음악적 색깔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강렬하고 거친 하드 록보다는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록이나 보다 대중적인 어쿠스틱 록이 인기를 끄는 요즘, 옛날 음악 좀 들어봤다 하는 일부 마니아들을 제외한 음악 팬들에게 LA메탈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록의 불모지라고도 불리는 한국에서 LA메탈을 현시대에 맞는 사운드로 재해석해 새롭게 선보이는 팀이 등장했다. 반항적이고 불량스럽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게 되는, ‘나쁜 매력’을 지닌 5인조 밴드 더 히스테릭스(The Hysterics)가 그 주인공이다.

블루지한 ‘불량 로큰롤’을 다시금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지난해부터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한 더 히스테릭스는 최근 첫 EP 앨범 ‘테이크 잇 슬리지(Take it Sleazy)’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확고한 세계관이 드러나는 더 히스테릭스의 멤버들을 만나 결성 계기부터 앞으로의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봤다.

◇화려한 경력 지닌 ‘중고 신인’ 밴드, “음악으로 돈 벌겠다는 욕심 없다”

더 히스테릭스란 이름만 들으면 신인 밴드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팀에는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멤버들이 모여 있다. 보컬 김세헌은 밴드 엑스터시(EXTASY)·걸(GIRL)·이브(EVE)를 거치며 한국 대중 음악계에 록 음악을 전파하는 데 일조했고, 기타의 정유화 또한 내 귀에 도청장치와 이브에서 활동한 실력파다. 또 한 명의 기타 닉은 노바(NOVA)·골드멤버(Goldmember)·바닐라 유니티(Vanilla Unity)에서 경력을 쌓았고, 더더밴드 출신의 베이시스트 이창현은 더 히스테릭스와 투인디안((IINDIAN) 활동을 병행 중이다. 드러머 조명찬은 밴드 지하드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메탈 스피릿’을 길러왔다.

얼핏 보기에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섯 사람이 함께하게 된 중심에는 김세헌과 정유화가 있었다. 두 사람은 늘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걷게 만든 LA메탈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고, ‘언젠가 꼭 함께 메탈 밴드를 하자’는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러던 중 음악적 취향과 마음이 맞는 멤버들을 만나게 됐고, 두 사람의 오랜 꿈이 마침내 이뤄지게 됐다.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서 LA메탈 밴드를 하는 게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에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유명해지겠다는 욕심도 없었고요. 그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돈이야 다른 걸로 벌면 되죠. 연주력을 가장 우선으로 하되, 소위 말하는 ‘날라리’ 같은 록 스피릿을 가진 친구들끼리 무대 위에서 난장판을 벌이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마침 딱 그런 멤버들이 갖춰진 것 같아요. 건즈 앤 로지스의 곡으로 첫 합주를 했고, 그날 새벽 다섯 시까지 수다를 떨었어요. 밴드는 특히나 멤버십이 중요한데, 다섯 명 모두 나이차에 관계없이 정말 잘 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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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LA메탈 색채와 어우러진 현대적 사운드,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더 히스테릭스의 EP앨범 ‘테이크 잇 슬리지’에는 타이틀곡 ‘부스트 파워(Boost Power)’를 비롯한 총 여섯 트랙이 수록됐다. 처음 듣는 순간 “한국 밴드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서양 음악의 향기가 강하게 배어나온다. 단순히 모든 가사가 영어로 이뤄졌기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짙게 깔려 있는 90년대 LA메탈의 향기와 어우러진 세련된 현대적인 사운드, 질주감 넘치는 곡 전개와 연주, 거칠고 강렬한 보컬이 단숨에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실제로 머틀리 크루·래트·에어로스미스 등과 작업한 바 있으며 이번 더 히스테릭스의 ‘테이크 잇 슬리지’ 마스터링을 맡은 엔지니어 데이비드 도널리(David Donnely)는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 “미국의 어떤 밴드냐”고 물었다는 후문이다.

“감성적이고 멜로디컬한 록이 아닌, 시원하게 달리는 느낌이 강한 음악을 담고자 했어요. 한국 대중가요 느낌이 나는 곡들은 철저히 지양했죠. 가사에도 흔한 사랑 얘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냈고요. 그런 저희의 의도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곡이 ‘부스트 파워’였기 때문에 이견 없이 타이틀곡으로 결정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더 히스테릭스가 90년대 LA메탈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팀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테크닉 경쟁에 가까운 기타 솔로 연주나 찢어질 듯 내지르는 그 시절 메탈 특유의 기교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대신 보다 현대적인 편곡·연주·레코딩 테크닉의 산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그들의 의도대로 과거 메탈 음악의 좋은 점들만을 수용한, 전 세대 음악 팬들을 아우를 수 있는 발전적인 ‘21세기형 LA메탈’이 탄생한 셈이다.

“논현동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는데, 1937년산 스타인웨이 오리지널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커스텀 악기들도 많았고 굉장한 열기를 내뿜는 미국 콘솔도 있었어요. 덕분에 미묘하지만 은근히 따뜻하고 풍부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제대로 뽑아낼 수 있었죠. 녹음도 신경 써서 했고 마무리도 잘 된 덕에 굉장히 질 좋은 사운드의 앨범으로 완성됐어요. 요즘은 하드코어와 힙합, 록과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사운드가 합쳐진 퓨전 음악들이 많지만 서서히 만들어진 소스에 질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들으면 굉장히 시원하면서도 정감이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더 히스테릭스는 자신들의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키거나 음악 시장의 성향을 뿌리째 바꿔버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메탈 음악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갖고 있다.

“음악이란 게 약 20년을 주기로 유행이 돌고 도는 것 같아요. 70년대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나 랜시드(Rancid)를 필두로 시작됐던 펑크 음악이 90년대에 조금 달라진 형태로 다시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이제 슬슬 메탈도 다시 부흥할 시기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80년대 메탈 음악을 오마주로 한 미국 밴드 스틸 팬더(Steel Panther)가 요즘 그쪽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곤 해요. 블랙 베일 브라이즈(Black Veil Brides) 같은 팀도 21세기형 머틀리 크루를 주장하며 나온 팀이고요. 더 히스테릭스 역시 지금의 다섯 멤버가 함께, 보다 많은 사람들이 메탈 음악에 흥미를 갖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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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밴드에서 철저한 인디 밴드로…“좋은 음악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

더 히스테릭스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바로 보컬 김세헌의 변화다. 그는 이브 시절에 선보였던 말랑하고 부드러운 보컬과는 전혀 다른, 마초적이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로 더 히스테릭스의 곡들을 노래한다. 이브 때부터 그를 알았던 사람은 창법이 많이 변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이 그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선호해 온 보컬이었다는 것이 김세헌의 설명이다.

“스무 살부터 엑스터시로 활동했었는데, 그 때 지금과 거의 비슷한 보컬 스타일을 추구했었어요. 하지만 걸이나 이브로 활동을 하면서 많이 변했죠. 회사에 소속돼 있다 보니 샤우팅을 하거나 하이톤을 내지르면 ‘시끄러우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라’고 제재를 받았어요. 샤우팅은 일부 곡에서 효과음 정도로밖에 쓸 수 없었고요. 가요 창법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려니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은 어린 시절의 ‘깡패 샤우팅’과 이브 시절의 리드미컬함이 잘 합쳐진 것 같고요. 원점으로 돌아와 일부러 예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지 않다 보니 더 편하게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김세헌)

또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김세헌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비주얼 록’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인이 머리를 띄우고 화장을 하니 일본 비주얼 록 추종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제이록(J-rock)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제가 좋아했던 건 서양의 글램록”이라고 해명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한 때는 각종 음악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는 밴드로 활동하던 그가 소규모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안타까움은 없는지 묻자 김세헌은 “전혀 없다”고 즉답했다. 오히려 “여섯 팀이 50인승 버스를 대절해서 부산에 공연하러 갔더니 관객 수가 다섯 명밖에 없더라. 그래도 재밌었다”고 말하는 김세헌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철저하게 인디로 돌아가서 돈 한 푼 없이 활동을 하고 있고, 멤버들끼리 만원씩 걷어서 합주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티셔츠나 술병, 스티커, 피크 같은 굿즈들을 만들며 직접 팀을 홍보하는 것도 재밌고요. 이번 EP앨범은 텀블벅(소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서 제작했는데 사실 음반과 뮤직비디오 제작비, 굿즈 제작비와 배송비가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멤버들의 사비를 제법 들여야 했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앨범이 나왔고, 저희에게 기대를 걸고 투자해주신 팬 분들에게도 보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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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불량 로커들, “국내외 넘나들며 어디서든 공연을 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

더 히스테릭스의 강점 중 하나는 음악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도 불량한 로큰롤 늑대들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화장, 손에 들린 맥주병과 담배,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몸까지 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과격한 액션까지.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음악 장르에 맞춰 분장을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는데 집에서 입던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건 좀 아니라고 봐요. 패션도 음악의 한 부분이니까요. 물론 너바나(Nirvana)가 넝마 같은 옷을 입고 낡은 컨버스를 신는 건 그들의 음악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요. 많은 한국 밴드들이 강렬한 음악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친절하게 외치는 게 너무 이상해요. 센 음악을 하면서 얌전하게 서서 연주만 하는 것도 싫고요. 실제 생활에선 그렇지 않더라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나쁘고 불량스러운 콘셉트를 연기하는 게 저희의 모토예요. 클럽 측에서 ‘미성년자 관객도 있으니 술과 담배는 자제해달라’고 해서 맥주병에 물을 담아 올라간 적도 있어요.(웃음)”

최근 더 히스테릭스는 클럽 공연부터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EBS ‘스페이스 공감’ 등 각종 크고 작은 무대들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밴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지 묻자 멤버들은 망설임 없이 “빌보드 차트 진입”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보러 가면 은근히 ‘한국 밴드 중에 이 팀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록 마니아들은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음악만 잘 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걸 느껴요. 일단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한 두명씩 관객을 늘려가고, 그 후로는 본격적으로 해외 라이브도 추진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음악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교류 공연을 하자는 얘기도 나누고 있고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공연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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