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바람의 춤꾼이 데려다준 37°C의 세상

[칼럼] 바람의 춤꾼이 데려다준 37°C의 세상

기사승인 2017. 11. 15.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박미경 강 컨텐츠 대표
198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프랑스 영화 '베티 블루 37˚2'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인간의 적정 온도가 우리가 통념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평균 온도 36.5°C 보다 조금 높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인간의 가슴이 따뜻하게 박동하는 37°C의 세상. 그 따뜻한 인간 세상을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춤꾼' 덕분에 체험하게 됐다.

그 이전까지 나는 이 사회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다. 사냥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돌도끼로 죽이는 원시시대 보다 이 사회가 더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치부(致富)를 위해 남을 서슴없이 깔아뭉개고 자신의 치부(恥部)가 산처럼 쌓이고 그 사실이 온천하에 다 알려져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회. 오히려 치부(恥部)를 쌓을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생기고 출세하는 사회. 장 폴 사르트르나 현진건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그들의 소설 제목을 '구토 권하는 사회'로 바꿨을까.

야만적인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택한 방법은 귀 닫고 눈 감는 것이었다. 구토를 유발하는 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이민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이야말로 이 야만의 시대를 더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을 한 남자를 만나면서 깨닫게 됐다.

15년 전, 이 세상에서 규정한 춤의 경계를 허무는 한 남자를 만났다. 진눈깨비 내리는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몸을 떼굴떼굴 구르고 머리를 바닥에 짓찧으며 슬픔과 분노가 손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배어있는 그의 춤사위를 보며 전율했다. 어떤 예술가가 저토록 진한 아픔과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까. 20대 때 만났다면, 무한 사모함으로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삼.헌, 내 가슴에 강렬한 화인을 남긴 춤꾼. 어린시절 흑백 TV에서 하는 발레공연을 보고 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는 발레리노가 되고 싶었으나 광주학살을 목격한 이후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이들을 위해 진혼무를 추는 거리의 춤꾼이 된 남자.

불의와 부정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 그의 인생역정을 그의 친구인 최상진 감독이,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숨진 효순이 미선이 참사부터 촬영하기 시작해 올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까지 담은 영화 '바람의 춤꾼'.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작가로 참여한 나는 무수한 37°C들을 만났다. 억울하게 숨진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겨울 광장에 촛불이 꺼질까 두손으로 촛불을 감싼 채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할머니, 국가폭력에 희생된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국가폭력을 멈추게 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혔던 블랙리스트 예술가들, 세월호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인양 수년간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시민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야만의 늪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운 세상으로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괴로워서 세월호 뉴스만 나오면 꺼버렸거든요. 그런데 이삼헌 춤꾼의 춤을 보고 막 눈물이 나면서 위로가 되는 거에요. 아, 내가 외면한다고 내 괴로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구나. 아플 땐 같이 아파해야 하는구나...!"

이삼헌 춤꾼의 진혼무를 우연히 본 후 '바람의 춤꾼' 공동체 상영이 있다는 걸 알고 멀리 이천에서 보러 왔다는 한 중년 여성이 울먹이면서 하던 말이 내 가슴에 회오리바람처럼 맴돈다.

아플 땐 같이 아파해야 하는구나...!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