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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온 런치박스] 푸마 ‘유적지 그래피티 훼손’에 주민들 오히려 ‘반색’…이유는?

[인도에서 온 런치박스] 푸마 ‘유적지 그래피티 훼손’에 주민들 오히려 ‘반색’…이유는?

기사승인 2017. 11. 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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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구시가지 그래피티
19일 인도 뉴델리의 차와리 바자르(Chawri Bazar)를 방문했다. 이 골목은 지난 14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가 신상 신발 광고 촬영을 위해 그래피티 퍼포먼스를 한 곳이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19일 인도 수도 뉴델리의 가장 큰 혼수시장 중 하나인 차와리 바자르. 17세기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인 ‘샤자한’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은 델리에서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와 더불어 최대 규모의 혼수시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오래된 역사만큼 건물들 역시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다. 건물의 외벽은 각종 전단지와 철물 간판들로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심각하다. 또한 노상방뇨와 각종 오물로 가득한 지저분한 거리는 현지인들마저 이곳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역사 지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런 이곳 차와리 바자르가 최근 현지 언론들과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지난 14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가 새로 나온 신발의 광고 촬영을 위해 역사 지구 내 여러 건축물에다 화려한 색채의 대형 스프레이로 그래피티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역사가들이 ‘문화재 훼손’이라며 푸마를 비난했다.

차와리 바자르
차와리 바자르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17세기 무굴제국 시대 5대 황제 샤자한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이다. 유적에는 무분별한 전단지 도배와 설치된 간판들로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본지 기자가 19일 푸마의 그래피티 퍼포먼스로 논란이 된 이 지역을 직접 방문해봤다.

우선 지저분한 거리와 골목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쓰레기가 없는 청결함이 먼저 눈에 띄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채로 그러진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록달록한 눈동자와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늑대머리 그림을 시작으로 힌디어로 자민(Jamin·땅)이라는 글자와 함께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림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확인해 봤다. 화려한 스프레이가 무굴제국의 유적에 독특한 라호리 벽돌 조각과 200년 이상 된 목조건축물을 뒤덮고 있었다.

앞서 인도 국립 예술문화유적전승재단(INTACH)의 스와프나 리들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마의 그래피티와 관련해 “석조건물의 복원도 문제지만 목조건축물의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광고를 승인한 사람들과 이를 방관한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래피티
벽화가 그려진 골목은 다른 골목에 비해 상당히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래피티 벽화를 반기고 있었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언론과 역사가들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 그래피티 벽화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이곳 주민인 삼수드딘(20)씨는 “벽화가 더러움 대신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벽화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다른 골목과 마찬가지로 냄새나고 더러운 그저 평범한 골목에 불과했다”며 “차와리 바자르의 여러 골목들을 이곳과 같이 꾸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피티
현지 언론과 많은 역사가들이 문제 삼고 있는 건축물이다. 목자재로 된 출입문이 본연의 색을 대신에 검은 페인트 색으로 뒤덮혀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난했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골목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M·D 카마르(31)씨 역시 벽화를 반겼다. 그는 “며칠 사이에 벽화를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다. 동네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카마르씨는 “언론과 역사가들은 이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예전 이곳의 모습을 한 번 봐야한다. 깨지고 쓰러져가는 건축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종이들로 흉물이 따로 없었다”며 “그들 중 그 누구도 이곳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우리는 이 벽화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푸마가 그래피티를 그리도록 허락한 건물주 아룬 칸델왈 씨는 “다른 골목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골목만큼 생동감 넘치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어 그는 “이 모든 것들이 그래피티를 통해 이뤄졌다. 그래피티 덕분에 골목은 더욱 아름다워졌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푸마 측에서 그림들을 지울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원치 않는다. 예전의 흉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며 복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차와리 바자르
이웃 골목에서 목자재 건축물의 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역사지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문화재 보존의 상태는 심각했다/=정인서 인도(뉴델리) 통신원
실제 뉴델리에서는 레드포트와 자마마스지드·꿉뜨미나르와 같은 유명 관광지의 경우 유지·보수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차와리 바자르처럼 역사지구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리 받지 못하는 유적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예컨대 델리 남부에 위치한 ‘베굼푸르 모스크’의 경우 14세기 술탄 왕조 당시 지어진 건축물로 델리 내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이슬람교 사원이지만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환경보호 활동가와 역사학자들은 문화유적지에 대한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로 지방정부의 예산부족을 꼽고 있다.

그래피티
일부 주민들은 “문화재 유지보수에 관심도 없던 역사가들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문화재와 벽화의 공존을 주장하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카비타(32)씨는 “이웃 골목 주민들이 깨끗해진 골목을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는 골목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청소도 하고 있다”며 변화된 일상을 이야기했다. 이어 그녀는 “아이들은 깨끗해진 골목에서 쾌적하게 자랄 수 있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며 “무조건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보다 그래피티의 벽화와 유적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관광지로 만들어도 좋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현재 차와리 바자르의 그래피티 벽화에 운명은 인도 국립 예술문화유적전승재단과 문화유적보존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다. 재단과 위원회는 빠른 시일 내에 문화재 복원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지만, 벽화를 유지해달라는 주민들의 건의가 증가하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와리 바자르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지, 아니면 고전과 현대이 융합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지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그래피티
현재 차와리 바자르 벽화를 유지할 것인지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운명은 인도 국립 예술문화유적전승재단(INTACH)와 문화유적보존위원회(Heritage Conservative Committee)의 손에 달려있다/=정인서 뉴델리(인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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