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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굿바이! 7월의 메리 크리스마스

[칼럼] 굿바이! 7월의 메리 크리스마스

기사승인 2018. 04. 2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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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1차 세계대전 중의 너무도 유명한 일화, ‘크리스마스 정전’을 소재로 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2005년 작)’는 다국적 영화다.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가 합작해 만들었다. 제작 주체로 참여한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영화를 만든 속내가 쉽게 드러난다.

제작 시점에 이들 국가들이 공동으로 추구한 구체적 지향점은 유럽연합의 성공과 확대에 있었다. 지금은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했지만, 재정위기가 있었던 2012년 하순 전까지만 해도 유럽연합은 새로운 경제공동체 이상의 유나이티드(국가연합)로서 그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보던 시기였다.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루마니아가 많은 내부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유럽국가인 불가리아와 함께 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제작 당시 이 영화가 품고 있던 ‘소원성취’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듯싶다.

반전(反戰)의 메시지와 휴머니티로 무장한 이 영화는 음악영화로도 분류될 수 있으며 그 형식은 멜로장르를 따르고 있다. 영화에서 주요 등장인물인 오페라 가수 슈프링거와 소프라노 안나 소렌슨은 연인 사이다. 슈프링거가 전쟁에 참전하기 전, 그들은 요한 제바스찬 바흐의 아리아 ‘당신이 함께한다면(Bist du bei mir!)’를 함께 부른다. 바흐가 이 곡을 정리했을 땐 분명 ‘당신’은 종교적 대상으로서 예수나 신을 지칭한 것이겠지만, 영화에서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 당신은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서 연인인 서로를 지칭한다.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애절하다. 지금 사랑하는 당신은 훗날 내가 죽을 때, 나를 지켜줄 사람이다. 죽어가면서까지 서로의 죽음을 지켜줄 영원한 사랑, 결혼식장의 흔한 주례사인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제 그들은 헤어져야 하지만 같이 전쟁터로 나가 죽음이 일상인 곳에서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전장에서 그들은 군인들 앞에서 함께 위로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힘은 참혹한 전쟁 당사자인 유럽인들이 사실 ‘서로 사랑하라’는 교리로 묶어져야 할 하나의 신앙공동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제 병사들은 진영을 넘어 서로 노래를 교환하고 전투를 멈춘다. 그리고 마침내 위생병으로 종군 중인 신부의 집도 아래 다 함께 공동의 신께 예배를 드린다. 같은 신앙을 가진 유럽은 근본적으로 하나였던 것이다. 영화가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를 설파하고자 함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와 같은 악당이 딱히 없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를 앞에 내세운 ‘강력한 배후의 두 세력 간 충돌’이다. 전쟁은 이미 무수히 많은 식민지를 선점한 선발주자와 그것을 따라잡으려는 후발주자 간의 피할 수 없는 마찰을 발칸반도라는 비운의 땅에서 대리전으로 치르려다 걷잡을 수 없이 유럽대륙 전체로 확전됐다. 당 시대의 정황이 이미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는 사실은 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2차 세계대전 땐 전쟁을 막아보려는 정치적인 협상의 시도가 분명히 있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은 그다지 전쟁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을 특정하기엔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임계점에 이르러 있었다. 누구도 전쟁이 그렇게 어마어마할 줄은 몰랐을 뿐이다.

이제 식민지 수탈로 축적된 자본은 전쟁무기를 개량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전투의 장을 공중으로까지 확대한다. 종래의 전쟁과 달리 군인 이외에 민간인도 많이 희생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독가스와 같은 대량살상 무기들이 만들어지고, 재래식 무기 또한 가공할 수준으로 개량·고도화된다. 고도화된 전쟁무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끝을 알기 어렵게 됐고, 병사들은 진흙 구덩이 속에 갇혀 하반신이 썩어들어 가면서도 참호를 지켜야 했다. 그야말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부조리한 전쟁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영화는 독일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루이스 마일스톤 감독·1930년 작)’가 있다. 역설적인 제목이다. 이상 없지 않은, 매우 이상한 이 전쟁은 이상 없음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정전’은 전쟁에서 귀환한 병사들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다. 실화이지만 어디까지나 ‘가공된 실화’다. 적어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전투로 죽고 싶지는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특정 시점 혹은 특정 장소에서 일부 소대 혹은 분대 단위로 전투를 기피했을 수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전투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적대국 병사들과 우연히 조우라도 하게 되면 그들은 상호 간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그 자리를 스쳐 지나친다.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 같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심리이지 않을까 싶다. 상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특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야만을 상대로 식민지를 만들어가며 문명을 자랑하던 서구의 제국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야만이라고 부르기도 부족한 포악스러운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을 때, 자기부정의 한 방편으로 “그래도 우린 휴머니즘이 있었다”라고 자위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빈번히 ‘종교의 수호와 신앙의 선교’라는 명분하에 전쟁터가 된다. 경계 저편의 다른 신을 믿는 자들은 야만스러운 이교도이기에, 경계 이편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하는 방편으로 전쟁 중에 저편에 대한 살해를 서슴없이 수행하게 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면피이며 전쟁이 끝난 후 살인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갈등을 가지지 않는다.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야만을 징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 문명을 자랑하며 20세기를 맞이한 유럽인들이 감당하기엔 이 전쟁은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로 가득했다.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었음을 증명하기엔 ‘크리스마스 정전’만 한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실화가 가공돼 그 이상의 특화된 지위를 얻게 된, 말하자면 ‘신화(Mythos)’가 출현한 것이다. 모든 신화엔 작동원리로서 ‘이데올로기’가 감추어져 있다. 즉, 자기부정과 자기연민을 위해 가공된 ‘크리스마스 정전’이라는 1차 세계대전의 ‘신화’가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이 지향하는 경제공동체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로 말미암아 재소환된 것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의 ‘크리스마스 정전’ 이후, 군사법정에 회부된 장교와 병사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기간 소규모 병력 단위의 전투기피 행위가 있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그로부터 몇 개월 후인, 1915년 4월 최초로 독가스가 사용돼 이에 노출된 무수히 많은 병사가 어두운 참호 속에서 고통스럽게 사망한 것을 보면 ‘크리스마스 정전’은 신화임이 분명하다. 정전은 정전일 뿐 종전의 선언이 아니다. 전쟁은 ‘크리스마스 정전’ 이후에 더욱 악랄한 수법으로 많은 병사들과 민간인을 죽여 나갔다. 결국 전쟁은 1914년에서 1918년까지 5년여 간의 전쟁기간동안 연합국과 동맹국의 군인과 민간인들을 가리지 않고 추산 5000여만명(군인 사상자 3900여만, 민간 10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끝이 났다. 이처럼 정전은 잠시의 휴전일 뿐이다. 전쟁의 반대는 휴전이 아니라 평화다.

오늘은 4월 27일,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만나는 날이다. 오늘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27일은 1953년 정전협정이 이뤄진 날이다. 2018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이뤄진 1953년 7월 27일로부터 65주년 되는 날이다. 65년간 우리는 1953년 ‘7월 체제’ 속에 살았다. 정전상태일 뿐 우리는 그간 전쟁 중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있었던 ‘크리스마스 정전’ 이후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던 사례는, 오늘 우리가 선언적인 방식으로라도 ‘종전’을 말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유다.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있다면 진심을 담아 간곡하게 묻고 싶다. 휴전을 멈추고 전투를 속개해 같은 민족 간에 6·25전쟁 때처럼 다시 포악스럽게 서로를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부모를 죽인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이가 있다면 정부는 지난 역사를 대신해 고개 숙여 미안함을 전해야 한다. 전쟁 중 원수의 총탄에 불구가 된 노병의 노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면 국가는 안타까움과 함께 응분의 위로를 전해야 한다. 시민사회 또한 그들의 상처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6·25전쟁의 발발 시점으로부터 9년 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한 이후 5년여간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냈던 태평양전쟁을 생각해 보자. 당시 전쟁의 당사국들인 미국과 일본은 이제 둘도 없는 혈맹을 과시하고 있다. 6·25전쟁 정전 시점으로부터 7년 후에 발발한 베트남전쟁을 통해 16년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미국과 베트남 역시 이제는 돈독한 동맹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돌이켜 볼 때, 딱히 뭐라고 응수해야 할지 머뭇거리게 되지 않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남북정상회담으로 말미암아 1953년 7월의 ‘메리 크리스마스’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길 기원한다. 이제는 정전이 종전이 되고 불가역적인 평화체제가 선언될 때다. 평화는 싸움 없음이 아니라 싸울 이유가 없을 때 완성된다. 한반도의 남과 북의 두 지도자가 상호호혜적인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선언하길 진심을 다해 소원한다. 굿바이! 7월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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