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거울의 각도

[칼럼] 거울의 각도

기사승인 2018. 08. 29. 10:5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황석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거리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놀리거나 욕하는 사람에게 ‘반사’를 외치며 되받아치는 장면이 있었다. 한 때 유행이 돼 또래들끼리 실없는 대화중에 반사를 난발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놀이엔 묘한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 말로 되받아치는 촌철살인의 내공 없이도 반사로 나를 공격하는 상대를 제압하니 그 효용성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미러링’으로 불리는 이런 놀이는 사실 점유운동에 뿌리를 둔다. 이는 토착민이나 거리의 빈자들이 자본의 힘에 밀려 터전을 잃고 밀려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고민에서 출발한다. 소위 상황에 맞선 상황을 만들자는 것인데, 이들을 상황주의자라고 한다. 상황주의자들이 우선적으로 실천한 행동은 점유운동이다. 자본가들이 잉여로 소유한 빈집이나 공장을 점거해 생활 터전으로 삼는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자본의 점유방식과 동일하게 급습이라는 방식으로 잉여의 인생들이 잉여의 공간에서 더 이상 잉여가 아님을 선포한다. 잉여의 공간은 다시 토착민과 거리의 빈자로 채워지고 그들은 더 이상 밀려 나지 않기 위해 공유를 실천함으로써 잉여의 삶을 극복한다.

점유운동은 최근에도 주목받았는데, ‘월가를 점거하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유명한 2011~2012년 월가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월가를 점유한 시위대는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2012년 봄, 전 지구적인 총파업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시위대는 총파업의 실천방안으로 2012년 5월 1일을 99%를 착취하는 시스템에 대항해 ‘일하지 않는 날’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직장의 일터는 물론 집안일도 하지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으며, 모든 소비를 중지한다.

자본의 순환에 동맥경화를 일으켜 폭력적인 착취구조에 카운터펀치 한방을 먹이자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방식으로 지극히 왜곡된 피라미드 구조를 와해시키고자 함이다. 스펙터클한 자본주의의 폭거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미러링이다. 월가의 시위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긴 했어도 이후의 삶은 좀처럼 바뀐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에 이 ‘선언적 실천’은 가치 있는 몸짓으로 새겨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편 월가의 투쟁은 34쪽짜리 소책자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지식인 스테판 에셀이 92세의 나이에 젊은이들에게 한 격정적인 연설을 책으로 묶은 ‘분노하라’가 시위가 있기 1년 전 세계적 열풍 속에 서점가에서 팔려나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출신이었던 에셀은 ‘레지스탕스 정신의 본질은 분노이며 현대의 젊은이에게도 분노할 의무가 있다’고 피력한다. 짧게 요약하면 ‘무관심에서 벗어나 분노할 것’을 당부한다. 그는 젊은이들이 대량소비를 위한 경쟁에 찌들어 약자를 멸시하고 문화를 경시하며 분노할 대상을 망각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글의 취지는 분명하다. 분노 대상이 이웃이거나 사회적 약자이어선 안 되며 행복하기 위해선 착취의 주체로서 시스템과 그를 주도하는 메이저를 자칭하는 소수의 무리들에 향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실천방향으로 착취 시스템에서 일탈할 것을 강권한다. 착취의 모든 구조에 종사하지도 소비하지도 말라는 주문이다.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미러링이다.

그런데 미러링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는 왜곡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베와 워마드의 논쟁에 대한 얘기다. 이제 과격한 일부 의견을 넘어 사회전반적인 남성혐오증과 여성혐오증으로 발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스러운데, 미러링의 대상이 ‘남과 여’ 서로여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거울의 각도가 잘못된 것 같다. 그 대상이 피라미드 정점을 향한 수직적인 분노가 아니라 성(性)을 달리한 이웃과 동료에게 향한 수평적인 분노로 인해, 창조적 주체로서 상호적인 연대의 가장 기초적인 조합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웃을 것인가? 이러한 이슈 메이킹을 통해 프레임을 짜는 일부 언론인가 아니면 그 배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