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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첫 민립(民立)학교·호남사학’ 고창중·고 내년 개교 100돌…“민족교육 산실·인재양성 요람의 거목”

‘조선 첫 민립(民立)학교·호남사학’ 고창중·고 내년 개교 100돌…“민족교육 산실·인재양성 요람의 거목”

기사승인 2018. 11. 1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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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회에서 고창중·고 동문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와 노무현정부 시절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지낸 정남기 고창중·고 총동창회장(왼쪽 두번째) 등이 일제 강점기 흥학구국의 정신으로 민족교육에 매진한 고창중·고 개교 100돌 행사 준비 간담회를 했다. /사진=고창중·고 총동창회

조선 첫 민립(民立)학교이자 호남 지역 첫 민족사학인 고창중·고(고창고등보통학교)가 내년 개교 100돌을 맞는다.


‘민족교육의 산실, 인재양성의 요람’ 인 고창고등보통학교는 1919년 3·1운동의 민족정신을 승계한 교육의 전당이다. ‘지성, 근로, 실천의 전인 교육’을 교훈으로 민족정신 함양에 앞장서 왔다.


고창고보는 1919년 일제 강점기에 애국충정과 흥학보국(興學報國)의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세워졌다. 민족의 얼이 서린 학교로서 고창군민의 애국충정과 민족혼으로 설립됐다. 지금까지 1만6000여 명의 동문이 배출됐으며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고창고보는 일제 강점기에 고창군민들이 뿌려 놓은 작은 씨앗이  민족중흥을 위한 인재요람의 산실이라는 거목으로 자라났다.


고창고보는 1924년 3월 처음으로 졸업생 7명을 배출했다. 1회 졸업생 7명의 출신 지역을 보면 고창 2명, 경북 1명, 경기 1명, 서울 1명, 평북 1명, 평양 1명이었다. 졸업생들의 출신 지역이 말해 주듯 고창고보에는 전국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창고보 교가(校歌)에도 이러한 창학(創學)정신이 깃들어 있다.


“갈재맥 받아온 성산 기슭에 우뚝이 서 있는 웅대한 집은 빼나고 씩씩한 쾌남아들이 나날이 자라나는 고창 밭일세. 이 밭에 자라난 보리, 십삼도 근역에 두루 퍼지고 이 밭에서도 자라난 보리, 온 세계 곳곳에 씨가 되겠네. 씨가 되겠네.”


고창고보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919년 4월 14일 부안면 사립 오산학교 인가 △1920년 3월 27일 사립 오산고등보통학교 인가 △1922년 2월 2일 고창군 군민대회 개최 학교 인수 운영 만장일치 결의 △1922년 4월 1일 오산고등보통학교 인수(양태승 교장 대리 임명) △1923년 7월 7일 재단법인 고창고등보통학교 인가 △1937년 9월 25일 전주 신흥학교 전교생 전학 입학 10학급 완성 △1938년 3월 15일 사립 고창중학교로 이름 변경 △1946년 6월 12일 중학교 수업 연한 4년에서 5년으로 변경 등이다.


특히 전주 신흥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면서 폐교를 당해 1937년 9월 25일 전교생과 교사가 고창고보에 통합됐다. 이처럼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고창고보의 애국보국 민족정신은 그 어느 학교, 어느 졸업생들보다 강렬했다.


김경식 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이 쓴 ‘한민족교육문화사’에 따르면 고창고보 설립은 전북 부안면의 오산학교 경영이 어려워 고창군 유지(有志)들에게 인계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양태승 오산고등보통학교장은 천장욱 고창군수와 고창군 유지였던 홍종철(당시 동아일보 지국장), 강대직, 김재종 등의 지지와 찬동을 얻어 1922년 2월 2일 고창군 군민대회를 열어 학교 인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학교 설립 기금은 고창군의 11명 재력가가 각자 출연하기로 한 할당 거출금 외 자금조달 대상에서 영세 거출액자 3000명 분을 단독 부담한 홍종철씨가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1922년 고창중·고 설립 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홍종철씨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조부이기도 하다.


고창중·고 총동창회 관계자는 “일본은 민족 교육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고창고보를 탄압해 공립학교로 전환시키려고 했었다”며 “그당시 고창고보를 세우는데 한 축을 담당했던 홍종철씨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고창군민의 애국충정으로 설립된 고창고보를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민족교육의 산실, 인재양성의 요람’ 인 고창고등보통학교는 1919년 3·1운동의 민족정신을 승계한 교육 전당이다. ‘지성, 근로, 실천의 전인 교육’을 교훈으로 민족정신 함양에 앞장서 왔다. /사진=고창중·고 총동창회

무엇보다 고창고보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한글, 우리말을 가르쳤다. 1945년 8·15 광복 직후 국사와 국어 교사는 고창고보 출신들이 도맡아 대한민국 과도기의 한글 교육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동문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창고보는 2019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면서 “과거 북(北)에는 오산고보(五山高普)요, 남(南)에는 고창고보(高敞高普)가 민족사학의 쌍벽이었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고창고보는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선배들이 일제와 맞서 싸웠다”면서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抗日) 정신을 고취시킨 항일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고 전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지낸 정남기 고창중·고 총동창회장은 “모교는 민족의 얼이 서린 학교로써 애국충정과 민족혼으로 세워졌다”고 말했다.


정 총동창회장은 “이처럼 훌륭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고창고보가 ‘민족교육의 산실, 인재양성의 요람’으로써 자부심과 긍지를 더욱 드높일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상(8091m)에 올라 세계 처음으로 고화질(HD) 생방송을 성공시켰던 동문인 정하영 KBS 부장. 정 부장은 “고창군민이 세운 모교를 졸업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면서 “고창중·고 후배들이 호연지기의 기상을 갖고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누비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9일에는 정남기 총동창회장과 홍영표 동문 등이 만나 일제 강점기 흥학구국의 정신으로 민족교육에 매진한 고창중·고 개교 100돌 행사 준비 간담회를 했다.


지난 11월 11일에는 고창중·고 개교 100주년 행사 성공을 기원하는 재경 고창중·고 동문가족 한마음 문화 축제가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한편 고창중ㆍ고 동문들과 고창군민이 함께하는 고창중·고 개교 100주년 행사는 2019년 4월 12일부터 14일까지 고창고 교정에서 열리며 기념식 행사는 14일에 개최된다.


지난 11일 고창중·고 개교 100주년 행사 성공을 기원하는 재경 고창중·고 동문가족 한마음 문화 축제가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사진=고창중·고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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