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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생일’ 그리고 페스티벌

[칼럼] 영화 ‘생일’ 그리고 페스티벌

기사승인 2019. 04. 1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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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지난 주말, 영화 ‘생일’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 필자가 궁금했던 점은 영화의 제목이었다. 세월호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의 아픔, 유가족들 간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그리고 사고현장에서 생존한 아이들의 번민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이 굳이 생일이어야만 했을까? 영화를 보기에 앞서 생일은 호기심을 넘어선 어떤 물음표로 다가왔다.

사실 ‘세월호’에 대한 소재를 상업영화에서 다뤘다고 해서 보기를 미뤘었다. 눈물범벅이 돼 극장을 나서는 상상 때문에 영화보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궁금증에 이끌려 영화를 보고 난 후 정작 든 생각은 예상보다는 눈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눈물이 전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극 중 세월호 희생자 ‘수호’의 생일을 맞아 유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모여 죽은 아이를 기억하는 클라이맥스 신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호의 생일날 등장인물도 관객도 모두 울었다. 그럼에도 굳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적어도 분명 필자에게 ‘생일’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영화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태어난 날이 생일파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주인공이 살아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승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데 있어서 기일을 기념일로 하지 고인의 생일을 기념일로 하진 않는다. 살아 숨 쉬는 주인공은 가족 혹은 친구들과 파티를 연다. ‘네가 태어나주어 고맙다’는 표현과 더불어 생일파티의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모두 함께 즐겁게 그날을 즐긴다. 그런데 영화에서의 생일파티는 주인공이 부재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부재를 채우는 것은 파편화된 시간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수호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울고 웃고 하는 사이에 한편의 내러티브가 되고 ‘치유극’으로 엮어지게 된다. 이러한 의례를 통해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아픔을 직시하게 된다. 따라서 ‘생일’은 ‘기억하기’에 대한 영화다.

때론 누군가의 생일은 동네잔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난 후 일 년 되는 날 우리는 돌잔치를 한다. 그리고 또 여섯 번째 띠가 돌아와 ‘갑자(甲子)’가 되는 날, 전통사회는 환갑잔치로 그날을 축하했다. 지금은 고령화로 그 의미가 쇠퇴하였으나,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돌이 되기 전이나 환갑이 되기 이전에 죽거나 돌아가시는 일이 많아 돌을 넘기고 환갑을 넘기는 건 축하할 일이었다. 이처럼 보통 생일잔치는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과 그 존재함에 대한 감사의 장이다. 영화는 살아서 축하받아야 할 아이가 존재하지 않은 데 대한 ‘부재의 존재론’이라는 역설로 세월호란 비극을 기억한다. 이와 같은 기억하기는 ‘카운터-메모리’로서 진실을 담은 ‘대항역사’로 뭉쳐져 거짓 역사에 저항하고 파장을 일으켜 마침내 균열을 낼 힘을 가지게 한다.

한편 생일은 확장된 의미에서 축제다. 누구누구 탄생 100주년, 혹은 무슨 기념일 30주년 등 누구 혹은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서 공동체는 축제를 열어 그날을 기념한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억하며 그 집단에 속한 소속감과 공동의 기억으로 매개된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의례를 수행한다. 누군가의 존재로 연계된 이들의 연대의 장이 생일이기에 이는 페스티벌의 성격을 띠게 된다. 연대의 시작은 대화의 시도와 상호 포용적 관계지향에서 출발한다. 대화주의에 기초한 문예이론으로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바흐친은 이론의 실천영역으로 축제론(카니발론)을 설파한다. 영화에서 전도연이 분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수호의 엄마 박순남도, 수호가 구명조끼를 벗어 자신을 살리고는 따라 나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사회적 자폐 상태가 된 수호의 여자 친구 은빈도, ‘독백’의 상태를 극복하고 생일이라는 축제의 장으로 나와 마침내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영화에서 유가족들은 때론 반목하면서도 서로서로 이해하고 포용해 간다. 자식을 잃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얻은 암과 투병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제안받은 보상금을 수령한 이를 두고 투덜대다가도 유가족 모임에서의 이루어지는 대화의 마무리는 어떤 이도 배제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묘사도 대사도 없으나, 무심한 미장센이 그렇듯이 그이 역시 수호의 생일파티에 털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말 한마디 없지만, 그녀의 사정이 전해지고 이해되게 되는 장면이다.

오늘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기일이다. 때마침 경기도에서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세월호 추모제를 페스티벌형식으로 개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세월호 추모제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아쉬운 점은 슬펐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애도’하기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우울’은 희생자 유가족들만의 몫으로 남겨진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기까지 세월호의 비극은 망각해야 할 과거가 아닌 극복해야 할 우리가 직면한 ‘지금 여기’의 문제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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