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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남북기본합의서 주역’ 정원식 전 총리 별세

<부고> ‘남북기본합의서 주역’ 정원식 전 총리 별세

기사승인 2020. 04.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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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시절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평양서 김일성 면담
문교부 장관 시절 '전교조 탄압'...총리 임명반대 밀가루 봉변
정원식 전 총리 별세, 향년 91세<YONHAP NO-1740>
고(故) 정원식 전 국무총리./연합뉴스
아시아투데이 이석종 기자 =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12일 향년 91살 일기로 별세했다.

정 전 총리는 신부전증으로 3개월여 전부터 투병하던 중 이날 오전 10시쯤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황해도 출신인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62년부터 같은 과 교수로 활동했고 1988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고인은 문교부 장관 취임 이듬해인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하자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비춰 인정할 수 없다”며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참여 교사들을 해임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나 한국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던 정 전 총리는 1991년 5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해 6월 3일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전교조 탄압 등을 이유로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와 달걀세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노태우정부는 대학생의 학사경고·학사제적제도 부활을 골자로 하는 학원안정화대책을 시행했고,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까지 이어지는 공안정국이 조성됐다.

그해 7월 8일 국회의 임명동의안 가결로 ‘서리’를 떼고 국무총리에 취임한 고인은 이듬해인 1992년까지 이어진 남북고위급회담의 수석대표를 맡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다.

특히 1991년 12월 11일부터 이틀 간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을 골자로 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어 1992년 2월 19∼20일 평양에서 열린 6차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도 맺었다.

1992년 10월 7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정 전 총리는 그해 말 민주자유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맡았다. 이후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국청소년상담원 고문,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이사장, 유한재단 이사장, 소강민관식육영재단 이사장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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