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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조손가정] (2) “엄마가 없다고 우는 아이 되진 않아요”

[가정의 달 기획/조손가정] (2) “엄마가 없다고 우는 아이 되진 않아요”

기사승인 2020. 05. 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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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이혼 후 양육 포기...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러
할머니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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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조손가정에서 이뤄진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 중 결국 눈물을 보이는 혜연이(12·여) 할머니 신모씨의 모습./사진=이주형 기자
희재(가명, 9·여)는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너무 어린 나이에 희재를 낳고 희재만 홀로 남겨둔 채 서둘러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가 타주는 분유와 할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묵묵히 커가고 있다. 요즘들어 부쩍 더 무릎이 아프시다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더 안쓰럽지만 희재는 가능한 더 많이 웃으려고 애쓴다.

희재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을 거뜬히 극복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한 작가 언니를 알고 나서부터는 엄마가 없다고 반드시 우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장 강아지도 안사주고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하하고 무시하는 세상의 편견이 무색하도록 더욱 더 반듯하게 자라 세상과 소통하며 내 꿈을 당당하게 펼치고 싶다.

서울의 각기 다른 구에서 살고있는 하윤이(가명, 5·여)와 혜연이(가명, 12·여)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는 이혼 후 행방이 묘연하다. 남겨진 아이는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하늘 어딘가에 살아있을 부모를 그리워한다.

할머니들은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찾으며 자신을 ‘엄마’라고 부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 무엇보다 하윤이와 혜윤이네는 여느 조손가정들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에서 나오는 노령연금과 기초수급비, 양육보조금,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굿네이버스 등 민간단체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모두 합치면, 각각 100만원과 70만원 정도는 되지만 아이들을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노쇠한 할머니들에겐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다. 하윤이를 돌보는 김모 할머니는 “지원금으로 먹고살 수는 있어도 다른 평범한 아이들의 절반도 못 해주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혜연이네 할머니 신모씨는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다. 수년 전 신씨의 아들이 사업에 실패한 후 낡은 집을 포함해 모든 재산이 가압류된 충격이 너무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씨는 색소 망막염까지 앓고 있다. 시야가 좁아지는 탓에 혜연이의 가정통신문을 읽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신씨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고 수술도 없다고 하더라”며 결국 굵은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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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방문한 하윤이(5·여)네 집 화장실은 올라오는 악취를 막기 위해 모든 하수구가 비닐봉지로 막혀 있었다./사진=이주형 기자
하윤이와 김씨는 화장실 악취가 진동하는 서울의 한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지난 13일 방문한 김씨 댁의 화장실은 모든 하수구가 비닐봉지로 막혀 있었다. 그럼에도 악취는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다. 김씨는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서 씻을 때를 제외하곤 그렇게 막아뒀다”고 설명했다.

지난 겨울, 강추위에 창문도 열지 못하고 악취를 버텨내야 하는 설움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하윤이가 자고 일어나 “할머니, 나 머리 아파”라고 할 때마다 김씨는 가슴이 미어진다. 김씨는 “하윤이에게 분유를 먹이지 못해 묽은 죽을 먹이고 동사무소를 전전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냄새나는 집도 그저 감사하다”며 “생계가 막막한 하윤이 아빠가 갑자기 집을 나가자 며느리도 이내 집을 나갔고, 며느리가 하윤이를 못잊어 다시 돌아왔다가도 대책이 없으니 또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혜연이네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업에 실패한 혜연이 아빠가 집을 나간 뒤부터는 연락이 아예 두절됐고, 엄마도 혜연이의 양육을 거부했다. 신씨의 가장 큰 걱정은 혜연이가 학교폭력 등 사고에 휘말렸을 때 발 벗고 나설 부모가 없다는 것이다.

하윤이와 혜연이를 돌보는 김씨와 신씨는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행여 아이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는 않을까, 부족한 사랑을 느끼며 더 외로워하지는 않을까 자나깨나 노심초사하는 할머니들의 바람은 그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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