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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재물운 넘친다...진주 승산마을

[여행] 재물운 넘친다...진주 승산마을

기사승인 2021. 12.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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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승산마을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가 모여 사는 승산마을은 약 600년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마을이자 LG그룹과 GS그룹이 탄생한 산실이다./ 김성환 기자
경남 진주 지수면의 승산마을은 ‘부자마을’로 불린다. “한 동네에서 천석꾼이 한 명만 있어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 동네엔 만석꾼이 두 명, 천석꾼이 열 명이나 됐어요. 함안에서 하동에 걸친 땅이 전부 이 동네 사람들 것이었다고 해요.” 마을 안내에 나선 가이드의 설명이다.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가옥은 여느 양반마을의 그것보다 컸단다. “경주에 양동마을이 있잖아요. 거기와 비교하면 집채 규모부터 달라요. 여긴 보통 1200~1300평이에요. 제일 작은 게 500평이 넘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이런 기와집이 150여 채나 있었단다. 지금은 50여 채가 남았다.

여행/ 승산마을
승산마을에는 구인회 LG창업주 생가와 허만정 GS창업주 생가를 중심으로 범LG그룹, 범GS그룹 기업들의 창업주 생가, 본가 등이 모여있다./ 김성환 기자
대체 어떤 마을일까. 승산마을은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 집성촌이다. 약 600년 전 허씨가 터를 잡고 300년 후 구씨를 사돈으로 맞았다. 만석꾼 중 한 명이 허준이다. “만년에 재산이 화로 남을 거 같아 국가, 이웃, 조상, 친족 4등분 해서 나누라고 했답니다. 이런 정신이 승산마을에 전해요.” 허준의 아들이 오늘날 GS그룹의 창업주인 허만정이다. 허만정은 1947년 마을 이웃인 구인회(LG그룹 창업주)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울 때 자본을 투자해 LG그룹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LG와 GS그룹이 탄생한 산실이 여기다.

이러니 승산마을에는 범LG그룹, 범GS그룹 창업주의 생가, 본가, 외가, 종중의 제사를 위한 제실 등이 모여 있다. 허만정 본가, 허창수(GS그룹 명예회장) 생가, 허승효(알토 회장) 생가, 허정구(삼양통상 명예회장) 생가, 구인회 생가, 구자원(LIG그룹 창업주) 생가, 구자신(쿠쿠전자 회장) 생가 등 쟁쟁한 이름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인연도 있다. 그는 매형인 허순구의 집에 1년간 머물며 승산마을 들머리의 지수초등학교(지수보통학교)를 다녔단다. 2018년 한국경영학회는 진주를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의 수도’로 선포했는데 승산마을의 기여가 컸다.

여행/ 승산마을
드론으로 촬영한 승산마을. 왼쪽 뒤로 보이는 방어산의 산세가 길하고 마을 앞 지수천과 멀찌감치 떨어진 남강의 물길이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이중으로 막아준다./ GNC21 제공
‘부(富)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승산마을을 종종 찾아온다. 정말 부의 기운이 서렸을까. 동행한 풍수지리 전문가는 승산마을의 산세와 물길이 길해 보인다고 했다. “물이 여러 겹으로 마을을 감싸면 좋다. 여긴 마을 앞에 지수천이 흐르고 멀찌감치 남강이 흐른다.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물길이 이중으로 막아준다. 산세는 명당의 성격이 어떤지 보여주는데 마을 앞에 솟은 방어산은 봉황이든, 학이든 새의 형태로 보인다. 함안과 의령 방향으로 날개가 뻗어 있고 머리는 이 마을로 향해 있는데 좋은 상징이다. 주변에 밥사발을 닮은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많은데 풍수지리에서 저걸 재물로 본다. 부자가 날 동네다.”

물길 방향이 교차하여 흐르는 ‘역수’ 얘기도 솔깃하다. 진주의 경승지 진양호에서 만났던 문화해설사는 “덕유산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남강은 진주 시내를 통해 부산 사하구까지 가서 낙동강과 만나요. 진주보다 더 북쪽에 있는 부산으로 강이 흘러가는 것이 희한해요”라고 했다. 그런데 풍수지리에서는 남쪽으로 향하는 지맥과 북쪽으로 흐르는 수맥이 조화를 이뤄 부의 기운을 융성하게 만든다고 보는 견해가 있단다. 따지고 보면 남강을 끼고 자리 잡은 진주 땅은 예부터 비옥했다. 강에 쓸려온 유기질이 풍부한 토사가 하류에 기름진 땅을 형성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지리서 ‘택리지’에서 진주 땅을 “볍씨 한 말을 심으면 60두를 수확하는 기름진 곳”이라고 했다. 이러저런 조건이 만들어낸 좋은 기운이 승산마을에도 오롯이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 승산마을 효주공원
좋은 기운이 풍긴다는 효주공원의 돌판/ 김성환 기자
여행/ 승산마을
좋은 기운을 받으려고 승산마을 가옥의 대문 문고리를 한번씩 붙잡고 가는 이들도 종종 있단다./ 김성환 기자
어쨌든 승산마을에 온 사람들은 한갓진 정취를 음미하며 돌담길을 걷고 도시생활의 먹먹함을 푼다. 돌담길은 총 5km에 걸쳐 조성됐다. 돌담 너머로 성공한 기업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덤으로 부자의 기운을 품는다. “사람이 살고 있어 함부로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대문 문고리를 한 번씩 잡아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마을 들머리에는 효주공원이 있다. 이곳 한쪽 바닥에 설치된 네모난 돌판도 ‘좋은’ 기운이 서린 곳으로 통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돌판에 그려진 문양이 허만정 집안의 병풍에 그려진 문양이라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여행/ 승산마을
옛 지수초등학교의 ‘부자 소나무’/ 김성환 기자
여행/ 승산마을 지수초등학교
옛 지수초등학교 교정의 신사임당 동상/ 김성환 기자
부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옛 지수초등학교 교정의 ‘부자 소나무’다. 지수초등학교는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효성그룹 창업주)가 함께 다닌 학교로 잘 알려졌다. 구인회는 승산마을 출신이고 의령 출신 이병철과 함안 출신 조홍제는 이곳으로 유학 왔다. 세 사람이 함께 심었다는 나무가 부자 소나무다.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가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대 한국의 100대 재벌 중 30명이 지수초등학교 출신이었다. 부자 소나무와 함께 교정 한편의 신사임당 동상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이들도 있단다. “그때엔 신사임당 동상을 세운 초등학교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나중에 신사임당이 5만원권 지폐 모델이 됐잖아요.” 현재 폐교가 된 이곳엔 기업가 정신 교육센터와 대한민국 기업역사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또 한 해를 계획하는 세밑에는 승산마을에서 좋은 기운을 좇는 것도 어울린다.

여행/ 진주성
겨울 들머리의 진주성/ 김성환 기자
여행/ 진주성 의암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의암’/ 김성환 기자
진주는 진주성과 촉석루도 유명하다. 진주성은 행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진주대첩의 무대다. 조선시대 진주는 경상도 일대를 관장하는 가장 큰 고을이었다. 남강이 지나는 진주성은 군사적, 지리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 전투(1592)에서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관군과 의병은 약 3만명의 왜병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듬해 벌어진 2차 진주성 전투(1593)에선 6000여 명의 병력으로 9만여 명의 왜병을 맞아 결사항전했지만 패하고 만다. 의기 논개가 진주성 촉석루 아래 바위(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것이 이 전투에서다. 한기가 짙어지는 계절에도 여긴 뜨거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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