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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구불구불, 말랑말랑’ 그림 같은 미술관...훈데르트바서파크

[여행]‘구불구불, 말랑말랑’ 그림 같은 미술관...훈데르트바서파크

기사승인 2022. 03. 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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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훈데르트바서 뮤지엄. 곡선으로 된 외벽과 화사한 색채가 독특하다. 옥상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대지와 연결되고 외벽의 많은 창문은 같은 모양이 없다. 뮤지엄에선 훈데르트바서의 오리지널 판화작품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건축물 모형 등을 관람할 수 있다./ 김성환 기자
최근 문을 연 제주 우도(牛島)의 훈데르트바서파크에 다녀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철학이 깃든 건축물과 미술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놀이기구 대신 예술로 꾸민 테마파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훈데르트바서파크는 우도봉 아래 톨칸이 해변 끝에 있다. 천진항에서 5분쯤 걸어가면 나온다. 건축물 꼭대기의 양파 모양 돔은 천진항에서도 보인다. 입구에서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광장이다. 훈데르트바서 뮤지엄, 우도 갤러리, 굿즈(goods) 숍이 광장을 에둘렀다. 양파 돔을 이고 있는 건축물마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한다.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이 이 세 건축물에 담겼다. 오스트리아 훈데르트바서재단이 이를 인증했다.

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오른쪽)과 기획전시관인 우도 갤러리/ 김성환 기자
“4년 동안 재단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1000통이 넘어요. 화상회의도 많이 했습니다.” 훈데르트바서파크를 운영하는 이지앤스토리의 이상엽 팀장 얘기다. “훈데르트바서가 원칙으로 지켰던 정형화된 모습을 정리한 것이 ‘바서 코드’인데 재단이 이것을 기준으로 건축물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관리해요. 코드에 모든 것이 부합하는 건축물에 인증을 하죠. 전 세계에 52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보는 순간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은 미술관 전용으로 지어진 세계 최초의 신축건물이란다. 여기선 그의 오리지널 판화 작품 20여 점을 비롯해 그가 설계한 건축물 모형 등을 연중 볼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힌다. 과거 한국의 미술 교과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기술된 탓에 낯선 이름이 됐다고 이 팀장은 설명했다. “현대미술에서 유럽보다 미국작가가 친숙하죠. 10년 전만 해도 에곤 실레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잖아요. 훈데르트바서가 지금 그래요.”

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에 전시 중인 훈데르트바서의 오리지널 판화작품/ 김성환 기자
건축가로선 스페인 출신의 안토니 가우디와 비견된다. 그만큼 스타일이 독창적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쿤스트 하우스 빈 미술관, 바트블루마우에 위치한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리조트 등이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외관에서 직선을 찾아보기 어렵고 정원과 나무가 꼭 포함된다. 이걸 두고 ‘말랑말랑한 식물성 건축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우도의 건축물도 곡선과 강렬한 컬러가 사용된 덕에 희한하고 화려하다. 팝업 그림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양이랄까.

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에 전시 중인 독일 다름슈타트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 김성환 기자
이게 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꾼 것에서 비롯됐단다. 훈데르트바서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환경포스터도 많이 그렸는데 ‘노아의 방주 2000’이라는 작품에 적힌 ‘당신은 자연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라는 문구는 잘 알려졌다. 인간은 몸, 의복, 주거공간, 사회적 환경, 생물권으로서 지구 생태계 등 다섯 개의 피부를 가지는데 각각의 피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다섯 가지 피부론’도 그렇게 나왔다. 자연친화적인 주거공간은 인간을 치유하고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의 상징을 나선(螺線)으로 봤다. 입체적 곡선은 생성과 소멸로 순환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직선이 배제됐다. 그래서 우도의 건축물을 보면 외벽, 지붕, 계단, 산책로가 구불구불하다. 너른 잔디밭에 동글동글한 언덕도 일부러 만들었다. 무심히 놓인 큰 바위도 여기선 ‘작품’이 된다. 눈길 끄는 점은 이 화려한 건축물에 초록색이 없다는 것. 자연이 초록이어서다.

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의 창문. 우도의 3개 건축물에는 총 131개의 창문이 있다. 같은 모양이 없다./ 김성환 기자
독창적인 외관만큼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옥상정원과 창문은 눈여겨봐야 한단다. 훈데르트바서는 ‘옥상정원의 창시자’로 불린다. 건축과정에서 훼손되는 나무와 식물을 옥상으로 옮겨와서다. 이름하여 ‘나무세입자’다. 그의 건축물마다 옥상정원이 있다. 그리고 옥상정원은 완만한 경사로 대지와 이어진다. “건축물과 자연이 이렇게 연결되는 거죠. 그래서 드론을 띄워 사진을 찍으면 숲과 건축물이 구분이 안 돼요.” 파크 부지에 있던, 우도에서 가장 오래된 연못인 ‘각시물’도 그대로 보존됐다.

여행/ 훈데르트바서파크
카페 톨칸이.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도봉이다./ 김성환 기자
훈데르트바서의 ‘창문권’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건축물의 세입자가 갖는, 창문을 꾸밀 권리다. 거주공간이 인간을 획일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의 발로다. 훈데르트바서재단도 그래서 창문 인증에 특히 공을 들인다. “훈데르트바서에게 집은 벽이 아니라 창문으로 이뤄지는 것이에요. 그만큼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도의 건축물에는 총 131개의 창문이 있어요. 똑같은 게 하나도 없죠. 창문 한 개당 7~10회씩은 재단과 협의했을 겁니다. 수정하고 검사받고 또 수정하고.”

알록달록한 훈데르트바서파크는 ‘사진 맛집’이다. 그렇다고 사진찍기에만 몰두할 일은 아니다. 건축물에는 건축가의 생각이 깃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건축물을 보는 것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거다. 여기선 세상을 떠난 훈데르트바서와 얘기할 수 있다.

여행/ 우도봉
우도봉에서 본 우도. 오른쪽 위로 양파 모양의 지붕을 이고 있는 훈데르트바서파크가 보인다./ 김성환 기자
훈데르트바서파크에는 재단의 인증을 받은 건축물 말고도 48개의 객실을 갖춘 콘도미니엄 훈데르트힐즈와 400평 규모의 카페 훈데르트윈즈, 해변 카페 톨칸이 등이 있다. 톨칸이에서 보는 톨칸이 해변과 웅장한 우도봉의 해안절벽이 참 멋지다. 톨칸이는 ‘촐까니’로도 불린다. ‘촐’은 건초, ‘까니’는 여물통의 제주말이다. 그래서 톨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다. 해변이 그렇게 생겼다. 훈데르트바서파크에서 우도봉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걸린다.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다.

여행/ 우도
훈데르트바서파크에서 우도봉으로 향하는 산책로. 노란 유채꽃이 봄을 알린다./ 김성환 기자
여행/홍조단괴해빈해변
우도 홍조단괴해빈해변은 모래가 눈부시가 하얗다./ 김성환 기자


봄날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은 비단 훈데르트바서파크뿐만 아니다. 유채꽃 피고 청보릿대 올라오고 검은 밭담, 파란 하늘과 바다까지 어우러지니 우도 전체에서 물감보다 선명한 색채의 잔치판이 벌어진다. 순한 바닷바람 타고 꽃향기에 예술의 향기까지 흐르는 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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