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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실험용 쥐냐”…‘先발표·後공론화’ 학제개편 거센 후폭풍

“우리 애가 실험용 쥐냐”…‘先발표·後공론화’ 학제개편 거센 후폭풍

기사승인 2022. 08. 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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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아이 발육·돌봄 무시한 정책" 성토
교육계 "국가교육위서 정책 철회 총력"
한덕수 총리, "학부모 의견 경청하라"…교육정책 폭주 제동
만 5세 초등 취학 학제 개편안 반대 집회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
"우리 애가 실험용 쥐냐?"

'만 5세 초교 입학'을 골자로 한 학제개편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발달과 돌봄 공백을 무시한 '빈곤한 정책', '졸속 정책'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발표한 주요 정책임에도 사전에 단 한 번도 공청회와 토론회 등 공론작업을 거치지 않아 국민을 우롱한 정책발표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학제개편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도 뒤늦게 대국민 설문조사 등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계·학부모, 교육적·현실적·절차적 모두 '문제'…'결사 반대'

1일 교육계에 따르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6개의 교육·보육·시민사회단체들은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구성하고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학제개편안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반대 서명도 하루만에 11만명이 돌파했다.

특히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이날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와 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와 함께 '초등 취학 연령 하향 반대' 공동요구서를 대통령실과 교육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전달하고 만5세 초등 취학 정책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교육계는 향후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반대 입장 분명히 하고 정책 철회 총력 활동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정부의 졸속 정책발표에 분노하며 교육적·현실적·절차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교육적 차원에서 아이들 신체 및 정서발달에 맞지 않고 국제적인 학제기준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가 중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26개국인데 반해, 만 5세에 입학하는 국가는 호주와 아일랜드 등 3개국이고, 영국은 만 4~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만 4~5세에 입학하는 영국의 경우, 초등학교가 7년제로 초교 전(前) 과정을 '0학년'이라 불리는 '리셉션'(Reception)이 있다. 특히 영국의 초교 1학년은 1교실에 교사가 3명 이상인 곳이 많다. 이는 만 5세 아이들이 아직 신체·정서적으로 발달되지 않아 돌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 5세 입학을 추진하려면 학교 적응 등을 돕기 위해 여러 명의 교사가 필요한데, 정부 발표에는 이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다.

또한 현재도 1~2월생들은 만 5세 조기 입학이 가능하지만 학습 진도를 못 따라갈 가능성이 커 학부모들이 오히려 조기입학을 꺼리고 있다. 실제로 2006년에는 1월생의 41.6%, 2월생의 58.6%가 취학을 유예했다. 이에 현실을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당장 날벼락이 떨어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다. 이에 대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어머님들이 우려하는 돌봄에 대해서도 1학년과 2학년에 대해서는 전일제 돌봄 저녁 8시까지 돌봄을 하겠다는 제안들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입학연령 하향 관련 발언하는 박순애 장관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연합
△한덕수 총리 "학부모 의견 충실히 반영하라"

거세지는 비판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1살 하향 조정하기로 한 교육부의 학제 개편안과 관련, 박 부총리에게 다양한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가 직접 나서 박순애 부총리의 교육 정책 폭주에 사실상의 제동을 걸면서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학제 개편안을 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돌봄 공백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따른 대응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 총리는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학부모님 등 교육수요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 관련 정책에 충실히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아이들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고, 가정마다 학교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총리는 또 교육부의 당초 발표대로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의 찬반 의견과 고충을 빠짐없이 듣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정책의 모든 과정을 언론에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소통하라고 지시했다고 국무총리실은 전했다.

이에 박 부총리는 이날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가교육위원회 공론화 과정 등을 통해 올해 연말에 시안이 마련될 텐데 열린 자세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너무 많은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고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달부터 학제개편과 관련해 전문가 간담회와 2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민 설문도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된 '4년간 5개 학년 출생아 입학' 시나리오 역시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그는 대신 해마다 1개월씩 12년에 걸쳐 입학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동갑이 동급생이 아닌 선후배로 나눠지게 되고 무려 12년이나 진행돼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시를 든 것"이라고 강조하며 "국가교육위원회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 초안을 만드는데, (의견수렴 과정에서)12개월에 걸쳐 입학을 앞당기는 안이 지지받으면 그렇게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육부는 공론화 과정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부총리는 "폭넓게 의견수렴이 선행되지 못하다 보니 여러 가지 우려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책은 말씀드릴 때(발표할 때) 완결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학부모, 전문가, 정책 연구 등을 통해서 시작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제개편안이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국가 교육 책임제'를 강화하는 것이 국정과제 목표로 되어 있다"며 "구체적으로 명시되진 않았으나, 아이들을 조기에 공교육에 편입시켜 출발선을 공정하게 하는 것부터 하려고 이번 업무보고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정책 발표 후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하는 교육부에 대해 앞뒤가 바뀐 정책 추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요 정책 결정에 있어서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 등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이미 결정한 것처럼 발표 후 추후에 의견수렴을 하는, 절차가 반대로 됐다"며 "교육부가 국가교육위의 법적 권한을 침해한 월권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교육위원회법 13조에 맞게 교육위가 이 안건을 다룰 수 있게 하루빨리 교육위가 출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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