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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이 책임져야 할 과목을 왜 고교가 책임져야 하나?

[기고] 대학이 책임져야 할 과목을 왜 고교가 책임져야 하나?

기사승인 2023. 11. 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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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박제남(인하대 수학교육과)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
교육부가 오랜 고민 끝에 '2028학년도 대입 개편 시안'을 발표하였다. 개편 시안에 따르면 수능시험에선 선택과목을 없애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 되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모든 학년에서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뀔 예정이다. 문·이과 통합을 기본으로 하고, 기존 이과계열 수험생들이 2교시 수학영역에서 시험 보는 <미적분 II>와 <기하>를 합쳐 '심화수학'이라는 별도의 선택과목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혹여 '심화수학'이 최종안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이공계 대학교육의 기반 부실화 및 과학·기술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수학계와 과학계의 반대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심화수학'이 수능 선택과목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전에 먼저 '심화수학'의 내용요소가 이공계열 대학교육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심화수학'의 내용요소는 대학 1학년 봄학기와 가을학기 과정 내에서 충분히 다루게 되어 있다. 특히, 고교 <기하> 과목은 이공계대학 2학년 1학기에 <선형대수>라는 교과목에 포함된다. 이와 같은 내용 체계는 전 세계 공대 교육과정이 표준화되어 있어서 국내외 대학이 같으며 교재 또한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 1, 2학년에서 충분히 배우게 되는 '심화수학'을 국내 이공계 교수들은 왜 학생들이 고교에서 충분히 학습하기를 그토록 원할까?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이공계 교수들은 자신들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둘째, 국내 대학 교육과정의 설계를 보면 취업 준비가 주로 4학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부 전공과목을 1, 2학년에 배치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따라서 학생이 '심화수학'을 고교에서 충분히 배워와야 공대 교수는 전공강의를 원활하게 할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교 교양과정 1학년 미적분 수업의 경우, 교수는 고교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건너뛰면서 수업을 매우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소위 대학 서열화에 '심화수학'은 매우 필요한 객관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공계 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에서 고교 과목 <확률과 통계>, '심화수학'을 다시 상세하게 접한다. 특히. 공학인증에서 필수과목인 <통계학>은 엑셀 등을 사용하여 대학교 1학년에 내실 있게 다루어진다. 따라서 이공계 신입생은 고등학교 때 <확률과 통계>를 배우지 않고도 대학 <통계학>을 수강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또한, 공과대학 2학년에서 제공하는 <공학수학 I>에서 학생들은 선형대수와 행렬 이론을 다시 접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고교에서 <확률과 통계>, '심화수학'을 모든 학생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 사실 지수함수나 삼각함수의 미적분을 다루는 '심화수학'의 <미적분 II>는 결과를 중심으로 다루다 보니 고교수업에서 많은 것들을 건너뛸 수밖에 없어 수학교사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경우, 2021년 SATⅡ 시험에서 <미적분 II>를 폐지했으며 이의 대체방안으로 이를 '대학과목 선이수제' 즉, AP시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적분 II>는 우수고교에서도 개설할 수 있고, 대학에서도 개설할 수 있지만 이를 이수하고 치르는 중앙단위시험에서는 대학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치르는 시험으로 간주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학점으로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은 신입생의 미적분 교육을 위하여 <미적분 기초>, <미적분 I, II, III>로 총 4과목(15학점)을 개설하여 신입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교에서 왠만한 미적분 과목을 이수한 학생은 <미적분 III>만 수강하면 되고 이수하지 않은 학생은 15학점 모두를 대학에서 취득해야만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은 지금도 주로 2과목(6학점)으로 미적분을 가르치고 있다. 이유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심화수학'을 배우고 수능에서 평가받고 입학하기 때문에 굳이 대학에서 책임지고 가르칠 필요가 없기 ㅤㄸㅒㅤ문이다. 대학교수가 책임지고 가르쳐야 할 과목을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책임지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말에 심화수학이 제외된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확정되기를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대학은 이에 맞추어 대학 교양 교육 및 전공 교육체계를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예로서 미국 대학처럼 미적분 교육을 12학점으로 확대하고 연습시간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한 고교에서 수학교사는 '심화수학'을 의무처럼 반드시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다항함수의 미적분까지 학생들의 수준과 속도를 보아가며 충실하게 수학을 가르치면 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수학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미적분Ⅱ>와 <기하>를 심화학습하고자 할 때 이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공하는 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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