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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별세] 글로벌 ‘효성’ 이끈 기술경영선구자, 소탈한 ‘재계 원로’

[조석래 별세] 글로벌 ‘효성’ 이끈 기술경영선구자, 소탈한 ‘재계 원로’

기사승인 2024. 04. 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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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등 재계 글로벌 네트워크로
한국 경제계 발전에 기여
정·재계 조문객 "존경받던 경영인"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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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재계 큰 별이 졌다. 기술중심경영 선구자인 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별세로, 대한민국 경제계에는 거대한 추모 물결이 일었다. 그는 35년간 그룹을 이끌며 우리나라 섬유산업 경쟁력을 세계적 위치로 끌어 올린 장본인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원로로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하며 한국경제 발전에도 지대한 기여를 한 경제계 큰 어른으로 평가 받는다. 고인의 집무실 책상에는 언제나 각국 언어 사전이 상비돼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세계적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다.

재계 거목이면서도 소탈한 성격으로 허례 허식은 피했다. 기술과 실용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에 맞게 직급에 상관 없이 의견을 듣고, 반영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 명예회장의 일생에 아픈 손가락은 슬하 형제들 간의 경영권 다툼이었다. 둘째아들인 조현문 씨는 형인 조현준 회장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통해 경영권 분쟁에 나섰다. 분쟁은 결국 형의 승리로 일단락됐으나, 효성그룹 역사와 조 명예회장에게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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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석래 회장 인물사진2

◇'기술경영' 뚝심…글로벌 '효성'으로 자리매김
지난 29일 별세한 조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48세인 1982년부터 2017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1970년 효성그룹 전신인 동양나이론에서 근무를 시작한 조 명예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기술중시 경영인으로 효성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었다. 조 명예회장이 동양나이론 전무로 근무하던 시절 연을 맺었다는 그룹 원로는 그를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조 명예회장은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술에 대한 '뚝심'을 이어갔다. 효성의 스판덱스는 조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공급망 확대, 품질 개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펼친 결과 효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

현재 효성은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일 만큼 수출지향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베트남 등 전세계에 걸쳐 50여개 제조 및 판매법인과 30여개의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집무실
조 명예회장의 집무실 책상, 영어, 일본어 사전이 놓여있다. /효성
◇민간 외교관…집무실에는 항상 외국어 사전

재계에서 조 명예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주도한 '원로'로 꼽힌다. 유창한 어학 실력에도 사전을 끼고 있을 정도로 교류에 진심을 다했다. 풍부한 글로벌 인적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 경제인들과 활발한 협력활동을 전개했다.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30년 이상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를 맡아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현재 '무비자'로 미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조 명예회장의 노력이 주효했다. 그는 2008년 '한미(韓美)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주도해 양국 간 교류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한 조 명예회장은 일본과의 네트워킹도 주도했다. 2022년에는 민간외교관으로서 공헌을 인정받아 한미FTA발효 10주년 공로패, 서울국제포럼 선정 영산외교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01. 전경련 태안 피해복구 봉사활동
전국경제인협회에서 충남 태안 기름유츨 사고 피해 복구 봉사활동에 나선 조석래 명예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모습. /효성
◇소탈한 성격으로 허례허식 탈피… 경영권 분쟁은 '아픈 손가락'

조 명예회장은 효성그룹 수장이자, 재계 원로였지만 소탈한 행보로 주목받았다.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의 말에 따르면 홍콩 주재원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이 와서 내려가 보니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고 했다. 깜짝 놀랐지만 정말 소탈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는 전언이다

효성그룹을 성장시키고, 재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조 명예회장에게 '아픈 손가락'은 둘째 아들이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촉발하면서 그룹 역사에도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차남 조현문 씨는 상주 명단에 오르지 않고, 짧은 시간 빈소를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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