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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잊혀진 전쟁, 잊혀진 화교 참전용사들

[단독] 잊혀진 전쟁, 잊혀진 화교 참전용사들

기사승인 2013. 06.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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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훈장 주고 사실상 국립묘지 안장 약속했지만 서거 후 물거품…대만도 사실상 참전국 인정해야
중화민국(대만) 국적으로 참전한 오중현 참전용사(오른쪽)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 대구 육군본부에서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왼쪽)으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받고 있다. 백 총장과 오씨 사이에 있는 인물은 김종오 인사국장이며 맨 오른쪽은 장창국 작전국장이며, 그 뒤에 있는 안경 낀 인물이 박정희(전 대통령) 당시 작전국 차장(대령) 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사진=오중현씨 제공 




아시아투데이 김종원 기자 = “한국이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웠는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도 못하고 공적비조차 없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서울에 있던 중화민국 화교(지금의 대만) 200~3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한 맺힌 60년의 세월뿐이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살고 있는 오중현 6·25전쟁 화교 참전용사(88)는 지난달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꿨다. 자신의 평생 정체성이었던 대만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6·25전쟁 중에 중화민국 대만 국적으로 1951년부터 53년까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북파 공작원 활동을 한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국적 변경을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2011년 6월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6·25전쟁에 참전한 공로가 인정받아 2개의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당연히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장남 오대성씨(52·부산 수영구 남천동)가 아버지가 쓰러진 후 가까운 구청과 보훈지청에 알아본 결과, 대한민국 법으로 사망 당시에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산에 사는 오씨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그토록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국적까지 바꾸면서 6·25참전 용사로서 명예 회복을 원하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리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각종 서류를 들고 이러 저리 뛰어 다녀야 한다.

오씨처럼 화교로 6·25전쟁에 참전해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고 훈장까지 받은 화교 참전용사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상이 빠듯한 참전용사들은 죽음에 가까워서야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위해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꿔야 하고 국가유공자 자격과 참전용사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사실 정부는 화교로서 6·25전쟁에 참전한 강혜림·위쉬팡 두 참전용사를 대만 정부와 참전 동료 전우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국립서울현충원 외국인묘소에 안장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강·위 두 대만 참전용사와 함께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영국계 캐나다인 프랭크 스코필드 전 연세대 교수가 안장돼 있다.

국방부는 1971년 12월 화교 참전용사 53명에게 종군기장을 수여하며 6·25 참전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중화민국 화교(대만국적으로 6·25전쟁에서 싸운 오중현 화교 참전 노병이24일 오후 충무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국립묘지 안장을 호소하고 있다. / 사진=김종원 기자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 9월 보국포장을 당시 10명의 생존 화교 참전용사들에게 수여하면서 그 공을 인정하고 기렸다.

살아 있는 화교 참전용사들이 늙고 병들어 화교참전동지회를 대신 계승하고 있는 김육안 여한화교참전동지 승계회장(55·경기 의정부)은 “박 대통령이 보국포장을 수여한 그 당시 ‘다른 것은 못해도 나이가 들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약속을 대원들에게 했다는 말을 아버지(김성정 화교 참전용사 12년 전 작고)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서거하면서 그 약속은 6·25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화교 참전용사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다.

현재 국내에서 연락이 닿는 화교 참전 노병들은 오씨와 함께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진 부학림씨(부산 거주)뿐이다. 그 당시 한국군 연락병을 했던 이석구씨(79)가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살고 있다. 미국에 2~3명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981년 한국화교참전동지회를 사회단체등록으로 허가함으로써 다시 한번 화교 참전 실체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전투 파병국가는 16개 국가이지만 중화민국(대만) 국민들도 이젠 6·25참전국으로 기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화민국(대만국적을 가진 화교들이 6·25전쟁 당시 참전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강혜림·위쉬팡 두 참전용사 묘역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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