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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특별한 캐스팅

[칼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특별한 캐스팅

기사승인 2018. 03. 1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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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잔잔한 감동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어느 겨울날 불쑥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아무도 살지 않아 그대로 방치된 집 뜰의 채소밭에서 얼지 않은 배추와 대파를 뽑아 된장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귀한 저녁식사를 한다. 채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혜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빼놓고는 영화 내내 특별할 사건도 없이 고향의 벗들과 같이 밥을 지어 먹고, 채소밭을 가꾸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교차된 씬은 그들이 각자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사연을 압축해 보여준다.

주인공 혜원의 특별한 음식 솜씨의 배경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로 설정된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가 있다. 그 외에 은숙(진기주 분)과 재하(류준열 분), 혜원은 저마다의 사정이 세간의 여타 젊은이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등장인물 간 감정선도 특별히 사건화 되지 않는다. 혜원이 겨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나고,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다. 그 사이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영화는 스케치하듯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엔 매우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친구와 주변인물 외에 ‘일상’과 ‘계절’이 캐스팅돼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고향에서 보내는 사계절의 일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힐링’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알바를 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연희의 일상은 ‘자연의 주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뒤틀려 있다. 고시학원과 고시텔의 공간은 계절의 주기를 감지하기 어렵다. 일 년 혹은 몇 년을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그녀는 잠을 쫓아가며 지낸다. 알바로 일하는 편의점이라는 공간도 매한가지다. 24시간도 부족해 25시의 욕망을 쫒는 소비의 공간에서 그녀는 밤을 새워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출과 일몰이라는 자전의 주기에 맞춰 일상을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 우리의 생체리듬은 역행할 수밖에 없다.

계절이라는 ‘공전의 주기’도 일출과 일몰이라는 ‘자전의 주기’도 모두 거스르며 대부분이랄 수 있는 젊은이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와 같은 시공간에서 자본주의적 ‘궤도의 주기’에 갇혀 일상을 소비하고 있다. 모 정치인이 선거에 들고 나왔던 멋진 말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영화는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과 계절’을 캐스팅해 세 명의 젊은이들 옆과 앞, 뒤에 배치해 놓았다. 딱히 누가 ‘전경화’되지도 ‘배경화’되지도 않는다. 혜원, 재하, 은선 그리고 일상과 계절은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인다.

일상의 문제를 학문의 분야에서 연구한 사상가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다. 그는 역저 ‘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성’의 문제에 대해 사유했다. 어떤 반복 속에 매몰될 때 우리의 삶은 더없이 비참해지기도 하고 발전하기도 한다는 그의 사유를 쫓아가다보면 일상의 문제는 녹록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류는 농업과 정착이라는 선택을 통해 계절이라는 주기를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의 삶은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낮과 밤의 주기로 나뉘었다. 또 산업화의 가속으로 인해 일일 삼 교대와 같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게 됐다. 물질적 풍요라는 떡고물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삶이 자연으로부터 이탈돼 버린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작은 숲이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일상성의 역으로 올라가 도시라는 궤도의 일상성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노동의 일상으로 다시 온전한 사계절의 주기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힐링’을 이야기한다.

혜원이 고향집으로 내려와 밥을 지어 먹고 햇볕을 즐기며 소소한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공전의 주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면 사계절을 즐기는 사람은 모두 공전의 주기를 사는 것인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돈을 가지고 자본이 제공한 계절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자연과 동화되는 공전의 주기를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궤도의 주기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젊은이들이 저녁이 있는 삶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세대 간 갈등으로 왜곡되는 양상을 보이는 최저시급 만원의 공약부터 사회적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합의를 도출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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