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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극한직업’, 프랜차이즈화와 ‘치킨의 사회학’

[칼럼] 영화 ‘극한직업’, 프랜차이즈화와 ‘치킨의 사회학’

기사승인 2019. 02. 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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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형사물 장르에 먹방을 차용한 형식이 꽤 흥미롭다. 방송이나 유튜브 채널, 이제 영화에까지 ‘먹방’이 통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먹고사는 문제임과 동시에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먹는다는 행위엔 복잡 미묘한 사회상이 함축돼 있다.

매체에 올라오는 수많은 맛집 탐방과 먹방을 통해 음식은 곧 대박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맛은 개인적으론 기호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 사회의 문화적 코드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음식문화가 퓨전이 대세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종 프랜차이즈화를 통해 맛은 혼종에 혼종을 더해 간다. 맛에 있어서 퓨전이라는 형식은 궁극적으로 달콤함이라는 표준화로 귀결된다는 점 또한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프랜차이즈를 통해 대량유통사회가 지향하는 바는 시장의 확대에 있다. 맛은 기억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 유통망을 통해 표준화된 맛의 코드는 우리의 유년을 지배한다. 세계시민이 공통으로 기억하는 맛의 코드가 우리의 유년을 획일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영화에서 프랜차이즈를 통해 마약을 유통시킨다는 설정이 은유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미 특정한 감칠맛에 중독돼 있다.

한편,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위해 ‘치킨집’을 열었는데 대박을 쳤다는 설정은 주효했다. 치밀한 수사를 위해 철저히 계획된 상황이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맡게 된 치킨집이 SNS를 통해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경찰로서 본연의 임무는 뒷전에 두고 본의 아니게 장사에 매진한다. 영화 ‘극한직업’은 소시민들이 꿈꾸는 성공과 애환을 영화적 모티브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흥행요소가 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러한 우연성 위에서 성립된다. 실패와 실패의 연속에서 우연히 열린 길이 천직처럼 성공가드를 달리게 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어 보인다. 관객이 동일시하기에 최적화된 지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익숙한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은 유머의 주요 키워드이다. 예를 들어, 사고로 지하 수십 미터 갱도에 갇힌 광부들이 구조될지 그 자체를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동료들과 번갈아 가며 밖에 나가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구조된 후라는 불확실한 미래적 상황에 과거의 공통분모로서 기억을 대입하는 것이다.유머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유머가 기억에 의존하는 이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프루스트는 마들렌 냄새로 과거를 소환한다. 기억은 후각에 기초하는데, 역으로 음식을 지칭하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냄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현재라는 시간 위에 과거와 미래를 매개한다.

극 중에서 조리를 맡아 닭을 튀기게 된 형사는 치킨과는 품목은 다르지만 ‘소갈비 집’ 아들이다. 그가 맛있게 닭을 튀길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대중의 기호에 맞는 표준화된 맛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후각적 감각으로서 맛이라는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맛난 치킨을 먹던 기억을 반복한다. 그리고 매체를 통해 연습된 ‘힐링’이란 이름의 자기치유를 작동시킨다. 잠복근무 장소로선 다소 낯선 치킨집은 풍미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관객의 이입을 통해 극장은 모든 맛이 축적된 정점의 치킨 맛을 소환하는 맛과 향의 예배당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치킨 먹을 준비는 완료됐다.

연장선에서 영화 극한직업은 다양한 음식이 소재로 나오는 여타의 음식 영화와도 차별화된 방식을 취한다. 바로 치킨만을 공략한다는 점이다. 마치 한 가지 품목만을 내건 맛집의 승부사와 닮아있다. 기호로서 취사 선택의 여지를 제한한다. 영리하게도 영화 극한직업은 시간의 흐름 속에 관객의 기억을 매개하는 방식으로 치킨이라는 하나의 코드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웃음엔 반드시 전제로서 기억과 같은 공유된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객은 모두 프랜차이즈 치킨으로 매개된 존재가 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보통의 우리네들은 그 속에서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신다. 영화를 통해 ‘치킨의 사회학’이 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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