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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염성 100배 즐기기] 송나라 마지막 충신 ‘육수부’의 충절을 담다… ‘염성 육공사’

[中 염성 100배 즐기기] 송나라 마지막 충신 ‘육수부’의 충절을 담다… ‘염성 육공사’

기사승인 2017. 12. 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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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옛 사당을 복원해 2009년(육수부 탄생 730주년) 개관
명·청 시대의 건축양식이 살아있는 '성급 중요 보호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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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성시 정호구 해방남로 유학가에 위치한 육공사는 성급 중요 보호문물로 지정돼 있다. / 사진 = 안민지 통신원
중국 역사에서 충신으로 기억되는 대표적인 인물을 한명 꼽자면 남송(송나라 후기)과 운명을 같이한 육수부(陸秀夫, 1236~1279)를 들 수 있다. 문천상(文天祥), 장세걸(張世傑)과 함께 송말삼걸(宋末三傑)로 불린 그는 장쑤성 염성(옌청)에서 태어난 남송의 관료다.

육수부의 충심을 기리기 위해 명나라는 1531년 사당을 건립하고 그의 초상화와 현판, 비석 등 전시했다. 7년 후에는 사당 뒤쪽에 호연당(浩然堂)을 증축하는 등 정성껏 관리했지만 몇 차례 전란을 거치며 대부분의 유적들이 소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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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말삼걸(宋末三傑)’로 불린 육사부(가운데), 문천상(좌), 장세걸(우)의 동상 / 사진 = 안민지 통신원
2008년 염성시는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3000만 위안(약 50억원)을 투자해 사당의 재건사업를 시작했고, 육수부 탄생 730주년인 2009년 11월 24일 육공사(陸公祠)가 개관했다. 염성시 정호구 해방남로 유학가에 위치한 육공사는 성급 중요 보호문물로 지정돼 있으며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육공사 자료에 따르면 원나라의 침입을 받은 남송 조정은 관료 대다수가 도망가기 바빴지만 육수부를 비롯해 충심을 가진 몇 명의 신하는 당시 9살이었던 익왕(益王) 조하(趙昰)를 단종으로 옹립하고 저항했다. 그러던 중 익왕이 죽자 육수부는 남송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8살이던 위왕(衛王) 조병(趙昺)을 다시 황제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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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부가 어린 위왕을 업고 바닷물에 뛰어들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 ‘애산순국(崖山殉國)’ / 사진 = 안민지 통신원
하지만 1279년 애산해전(崖山海戰)에서 원나라에 패퇴하면서 적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육수부는 순국을 결심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바다에 직접 뛰어들게 한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바다로 투신한다.

명·청 시대의 건축양식이 살아있는 육공사에는 이 같은 육수부의 충심과 기개가 녹아 있다. 서청(序廳)과 경충당(景忠堂), 정사당(正祠堂)을 통해 육수부의 근면·성실함과 남을 돕는 미덕, 효심 등을 엿볼 수 있고, 충렬당(忠烈堂)과 앙지당(仰止堂)에서 그의 청렴한 정치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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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와 송나라의 전쟁 대결도 / 사진 = 안민지 통신원
이 밖에도 육공사에는 비석 등 당대의 유적들과 유명인의 주련(종이나 천, 대나무 등에 새긴 글), 육수부와 관련된 역사 및 연구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육공사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입장 가능하며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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